뉴욕 공립도서관의 사서가 들려주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 #1
오래된 문을 열고 도서관에 들어오면 이상야릇하지만 정겨운 냄새에 가슴이 떨린다. 조금 걷다가 코너를 돌면 나타나는 에스터홀(Astor Hall)의 계단, 이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오르면 클래식한 라툰다 홀(McGrow Rotunda Hall)이 나의 출근을 환영한다. 곧이어 세상에서 제일 큰 방, 누구나 뉴욕에 오면 꼭 한번 와 봐야 하는 로즈메인리딩룸(Rose Main Readning Room)이 나온다. 그 방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뉴욕공립도서관의 사서다. 벌써 몇 년째인가? 26년째다.

Rose Main Reading Room, 가로 24m × 세로 91m. 천장 높이 약 16m. 전체 면적 약 2,140㎡.
좌석은 약 650석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기둥 없는(column-free) 실내 공간 중 하나. ⓒThe New York Public Library
앞으로 <뉴욕공립도서관 사서가 들려주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라는 제목 아래, 책 이야기와 도서관 연구 사서로서의 경험, 만났던 저명 인사들, 도서관 자료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유럽(특히 러시아)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마주한 역사 속 인물들과 문화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내 보고자 한다.
* * *
19세기 중반, 뉴욕은 한참 개발 중인 도시였다. 당시 유럽을 휩쓴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수많은 이민자들이 뉴욕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1860년이 지나면서 뉴욕은 파리를 제치고 런던 다음으로 큰 도시가 되었다. 그때 뉴욕에는 후에 뉴욕공립도서관의 전신이 되는 두 곳의 사립도서관이 있었다. 에스터(Astor Library, 1849~1895)와 레녹스(Lenox Library, 1870~1895) 도서관이다.
먼저 에스터 도서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었던 존 제이콥 에스터 (John Jacob Astor, 1763~1848)는 자신의 막대한 재산보다 더 의미 있는 유산을 남기고자 했다. 1848년 그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유언은 뉴욕 시민을 위한 공공 도서관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1854년, 에스터 도서관은 조용하고 학구적이며 위엄있는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일반 대출이 불가능한 연구 도서관으로, 사람들은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고 연구하며 지식을 탐구했다.

에스터 도서관이 연구자들에게 아주 제한적으로 개방한 것을 풍자한 그림: “이 도서관은 격주 월요일 오전 9시 58분부터 10시까지 개방합니다.”
『라이프(Life)』, 1892년 1월 7일. ⓒThe New York Public Library.
한편, 도시의 다른 쪽에서는 또 다른 부호 제임스 레녹스(James Lenox, 1800~1880)가 전혀 다른 방식의 도서관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희귀본, 고문서, 지도, 예술품을 수집하는 열정적인 컬렉터였고, 구텐베르크 성서와 초기 셰익스피어 판본처럼 귀중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었다. 이 황금 같은 컬렉션을 보관하기 위해 그는 1870년 레녹스 도서관을 설립했고, 1877년 5번가에 우아한 건물이 완공되었다. 하지만 방문에는 허가가 필요했고, 운영비는 끊임없이 부담이 되었다.
1890년대에 이르러, 에스터와 레녹스 도서관은 각각 장대한 역사와 소장품을 갖고 있음에도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바로 그때, 새로운 비전이 등장한다. 전 뉴욕 주지사 새뮤얼 J. 틸든(Samuel J. Tilden, 1814~1886)이 사망하며 ‘위대한 공공도서관’을 위해 자금을 남긴 것이다. 틸든 재단의 디렉터였던 존 비겔로우(John Bigelow, 1817~1911)는 에스터와 레녹스, 그리고 틸든 기금을 하나로 합쳐 ‘진정한 뉴욕 시민의 도서관’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그리하여 1895년 5월 23일, 이 세 유산이 합쳐져 뉴욕공립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으로 다시 태어났다.
(좌) Old Astor Library at Lafayette Place, NY (우) Lenox Library, NY in 1900. ⓒThe New York Public Library.
1911년 5월 24일, 봄날 아침의 맨해튼, 뉴욕시 전체가 설렘으로 가득 찰 만큼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서관에 줄을 섰다. 그 전날 도서관 개관식엔 당시 미국 대통령 테프트(William Howard Taft, 1857~1930)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였는데, 이때도 약 15,000명이 모였다. 십수 년간의 계획과 기금 모금, 건축 끝에, 마침내 5번가의 뉴욕공립도서관 본관이 문을 열었고, 대리석으로 빛나는 웅장한 홀과 도도한 계단, 높은 천장이 있는 열람실이 시민들을 맞이했다.
그날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데이비드 슈브(David Shub, 1887~1973)였다. 슬라브 문학에 대한 지대한 열정을 가진 그는 흥분된 마음으로 도서관 문을 지나 로즈 열람실에 들어섰다. 햇빛이 쏟아지는 넓은 공간 속에서 책들이 가지런히 놓인 모습을 보고, 그는 톨스토이와 니체의 사상적 대담인 『Nravstvennye idealy nashego vremeni(Нравственные идеалы нашего времени; 그로우트 著, 『현대의 도덕적 이상』)』을 요청했다. 오전 9시 8분, 사서가 조심스럽게 책을 건네주었을 때, 슈브에게 이 책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었다. 지식과 문화, 상상력이 더 이상 일부 특권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데이비드 슈브는 도서관의 첫 공식 이용자가 되었고, 이날의 이야기는 뉴욕 문화사에서 중요한 한 페이지로 기록되었다.

데이비드 슈브가 요구한 책. ⓒ유희권
도서관은 뉴요커(뉴욕의 시민들)에겐 ‘People’s Palace(시민들의 궁전)’라 불리며 지금껏 사랑받고 있다. 왜 그럴까?
앞에서 언급했듯이, 19세기에 유럽에서 수많은 이민자들이 배를 타고 뉴욕으로 건너오면서 도시의 규모가 급격히 커졌다. 먼저 수백만 명의 아일랜드인들이 1820~1860년 사이 심각한 빈곤과 아일랜드 대기근(1845~1852)을 피해 미국으로 향했다. 이어서 약 3~400만 명의 이탈리아인들이 고향의 경제 붕괴와 일자리 부족을 피해 새로운 삶의 기회를 찾고자 엘리스 아일랜드를 통하여 뉴욕에 도착했고 미국 내 다른 도시들로 흩어졌다. 또한 1880~1924년 사이에는 폴란드,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지역 등에서 온 약 300만 명 이상의 동유럽‧러시아 출신 이민자들이 산업 노동과 공장 일자리를 찾아 뉴욕을 비롯한 미국의 대도시로 몰려왔다. 그중 특히 100만 명이 넘는 유대인 이민자들은 포그롬과 차별을 피해 탈출했으며, 이중 다수가 뉴욕의 로어 이스트사이드(Lower Eastside) 같은 뉴욕 시내 도심지에 정착했다.
그렇다면 이 많은 이민자들이 머물 곳, 기대어 쉴 곳은 어디였을까? 이들을 맞이한 기관 중 하나가 바로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뉴욕공립도서관이었다. 그러나 42가에 세워진 중앙도서관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마치 이를 예견하기라도 한 듯,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는 뉴욕시에 520만 달러를 기부하여 무려 31개의 분관 도서관을 동시에 짓게 했다. 오늘날 도서관의 분관들은 92개로 늘어났으며, 더 넓게 보면 뉴욕에는 약 220여개의 공립도서관이 존재한다. 이는 뉴욕이 세개의 독립적인 도서관 시스템, 뉴욕공립도서관(NYPL), 퀸즈공립도서관(QPL), 브루클린공립도서관(BPL)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뉴욕시 어느 동네에 살든, 걸어서 10분이면 도서관을 찾을 수 있다.
이민자들의 도시로 출발한 뉴욕에서 도서관은 이민자들에게 어찌 보면 자신들의 집보다도 더 소중한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필요한 정보를 얻고, 영어를 배우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혔으며, 고국의 신문을 찾아 읽고, 직업 정보를 얻고, 도서관의 룸을 빌려 서로 교류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이제는 각종 컴퓨터 프로그램은 물론 AI 교육까지 선도하고 있다. 게다가 이 모든 프로그램이 무료이니, 뉴욕공립도서관은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나는 행복하다. 그래서 이 행복을 앞으로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지난 25년 동안 사서로 일하며 쌓아온 경험과 연구에 대한 열정을 담아…

맨하탄 42가에 자리한 뉴욕공립도서관 전경. ⓒThe New York Public Library.
글 | 유희권
뉴욕에서 살며 수많은 책과 희귀 자료를 연구하고, 그 자료와 연관된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먼저 간 이들의 ‘한탄’을 듣고 Dum Spiro Spero(“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의 삶을 좇고자 애쓰는 소박한 연구자. 두 권의 학술서와 20여 편의 논문을 집필했으며, 특히 2008년 공동 저술한 『Visual Resources from Russia and Eastern Europe in The New York Public Library: A Checklist』는 2009년 ARLIS(미국예술도서관학회)에서 Worldwide Books Award를 수상했다.
뉴욕 공립도서관의 사서가 들려주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 #1
오래된 문을 열고 도서관에 들어오면 이상야릇하지만 정겨운 냄새에 가슴이 떨린다. 조금 걷다가 코너를 돌면 나타나는 에스터홀(Astor Hall)의 계단, 이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오르면 클래식한 라툰다 홀(McGrow Rotunda Hall)이 나의 출근을 환영한다. 곧이어 세상에서 제일 큰 방, 누구나 뉴욕에 오면 꼭 한번 와 봐야 하는 로즈메인리딩룸(Rose Main Readning Room)이 나온다. 그 방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뉴욕공립도서관의 사서다. 벌써 몇 년째인가? 26년째다.
Rose Main Reading Room, 가로 24m × 세로 91m. 천장 높이 약 16m. 전체 면적 약 2,140㎡.
좌석은 약 650석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기둥 없는(column-free) 실내 공간 중 하나. ⓒThe New York Public Library
앞으로 <뉴욕공립도서관 사서가 들려주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라는 제목 아래, 책 이야기와 도서관 연구 사서로서의 경험, 만났던 저명 인사들, 도서관 자료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유럽(특히 러시아)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마주한 역사 속 인물들과 문화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내 보고자 한다.
* * *
19세기 중반, 뉴욕은 한참 개발 중인 도시였다. 당시 유럽을 휩쓴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수많은 이민자들이 뉴욕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1860년이 지나면서 뉴욕은 파리를 제치고 런던 다음으로 큰 도시가 되었다. 그때 뉴욕에는 후에 뉴욕공립도서관의 전신이 되는 두 곳의 사립도서관이 있었다. 에스터(Astor Library, 1849~1895)와 레녹스(Lenox Library, 1870~1895) 도서관이다.
먼저 에스터 도서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었던 존 제이콥 에스터 (John Jacob Astor, 1763~1848)는 자신의 막대한 재산보다 더 의미 있는 유산을 남기고자 했다. 1848년 그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유언은 뉴욕 시민을 위한 공공 도서관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1854년, 에스터 도서관은 조용하고 학구적이며 위엄있는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일반 대출이 불가능한 연구 도서관으로, 사람들은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고 연구하며 지식을 탐구했다.
에스터 도서관이 연구자들에게 아주 제한적으로 개방한 것을 풍자한 그림: “이 도서관은 격주 월요일 오전 9시 58분부터 10시까지 개방합니다.”
『라이프(Life)』, 1892년 1월 7일. ⓒThe New York Public Library.
한편, 도시의 다른 쪽에서는 또 다른 부호 제임스 레녹스(James Lenox, 1800~1880)가 전혀 다른 방식의 도서관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희귀본, 고문서, 지도, 예술품을 수집하는 열정적인 컬렉터였고, 구텐베르크 성서와 초기 셰익스피어 판본처럼 귀중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었다. 이 황금 같은 컬렉션을 보관하기 위해 그는 1870년 레녹스 도서관을 설립했고, 1877년 5번가에 우아한 건물이 완공되었다. 하지만 방문에는 허가가 필요했고, 운영비는 끊임없이 부담이 되었다.
1890년대에 이르러, 에스터와 레녹스 도서관은 각각 장대한 역사와 소장품을 갖고 있음에도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바로 그때, 새로운 비전이 등장한다. 전 뉴욕 주지사 새뮤얼 J. 틸든(Samuel J. Tilden, 1814~1886)이 사망하며 ‘위대한 공공도서관’을 위해 자금을 남긴 것이다. 틸든 재단의 디렉터였던 존 비겔로우(John Bigelow, 1817~1911)는 에스터와 레녹스, 그리고 틸든 기금을 하나로 합쳐 ‘진정한 뉴욕 시민의 도서관’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그리하여 1895년 5월 23일, 이 세 유산이 합쳐져 뉴욕공립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으로 다시 태어났다.
(좌) Old Astor Library at Lafayette Place, NY (우) Lenox Library, NY in 1900. ⓒThe New York Public Library.
1911년 5월 24일, 봄날 아침의 맨해튼, 뉴욕시 전체가 설렘으로 가득 찰 만큼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서관에 줄을 섰다. 그 전날 도서관 개관식엔 당시 미국 대통령 테프트(William Howard Taft, 1857~1930)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였는데, 이때도 약 15,000명이 모였다. 십수 년간의 계획과 기금 모금, 건축 끝에, 마침내 5번가의 뉴욕공립도서관 본관이 문을 열었고, 대리석으로 빛나는 웅장한 홀과 도도한 계단, 높은 천장이 있는 열람실이 시민들을 맞이했다.
그날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데이비드 슈브(David Shub, 1887~1973)였다. 슬라브 문학에 대한 지대한 열정을 가진 그는 흥분된 마음으로 도서관 문을 지나 로즈 열람실에 들어섰다. 햇빛이 쏟아지는 넓은 공간 속에서 책들이 가지런히 놓인 모습을 보고, 그는 톨스토이와 니체의 사상적 대담인 『Nravstvennye idealy nashego vremeni(Нравственные идеалы нашего времени; 그로우트 著, 『현대의 도덕적 이상』)』을 요청했다. 오전 9시 8분, 사서가 조심스럽게 책을 건네주었을 때, 슈브에게 이 책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었다. 지식과 문화, 상상력이 더 이상 일부 특권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데이비드 슈브는 도서관의 첫 공식 이용자가 되었고, 이날의 이야기는 뉴욕 문화사에서 중요한 한 페이지로 기록되었다.
데이비드 슈브가 요구한 책. ⓒ유희권
도서관은 뉴요커(뉴욕의 시민들)에겐 ‘People’s Palace(시민들의 궁전)’라 불리며 지금껏 사랑받고 있다. 왜 그럴까?
앞에서 언급했듯이, 19세기에 유럽에서 수많은 이민자들이 배를 타고 뉴욕으로 건너오면서 도시의 규모가 급격히 커졌다. 먼저 수백만 명의 아일랜드인들이 1820~1860년 사이 심각한 빈곤과 아일랜드 대기근(1845~1852)을 피해 미국으로 향했다. 이어서 약 3~400만 명의 이탈리아인들이 고향의 경제 붕괴와 일자리 부족을 피해 새로운 삶의 기회를 찾고자 엘리스 아일랜드를 통하여 뉴욕에 도착했고 미국 내 다른 도시들로 흩어졌다. 또한 1880~1924년 사이에는 폴란드,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지역 등에서 온 약 300만 명 이상의 동유럽‧러시아 출신 이민자들이 산업 노동과 공장 일자리를 찾아 뉴욕을 비롯한 미국의 대도시로 몰려왔다. 그중 특히 100만 명이 넘는 유대인 이민자들은 포그롬과 차별을 피해 탈출했으며, 이중 다수가 뉴욕의 로어 이스트사이드(Lower Eastside) 같은 뉴욕 시내 도심지에 정착했다.
그렇다면 이 많은 이민자들이 머물 곳, 기대어 쉴 곳은 어디였을까? 이들을 맞이한 기관 중 하나가 바로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뉴욕공립도서관이었다. 그러나 42가에 세워진 중앙도서관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마치 이를 예견하기라도 한 듯,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는 뉴욕시에 520만 달러를 기부하여 무려 31개의 분관 도서관을 동시에 짓게 했다. 오늘날 도서관의 분관들은 92개로 늘어났으며, 더 넓게 보면 뉴욕에는 약 220여개의 공립도서관이 존재한다. 이는 뉴욕이 세개의 독립적인 도서관 시스템, 뉴욕공립도서관(NYPL), 퀸즈공립도서관(QPL), 브루클린공립도서관(BPL)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뉴욕시 어느 동네에 살든, 걸어서 10분이면 도서관을 찾을 수 있다.
이민자들의 도시로 출발한 뉴욕에서 도서관은 이민자들에게 어찌 보면 자신들의 집보다도 더 소중한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필요한 정보를 얻고, 영어를 배우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혔으며, 고국의 신문을 찾아 읽고, 직업 정보를 얻고, 도서관의 룸을 빌려 서로 교류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이제는 각종 컴퓨터 프로그램은 물론 AI 교육까지 선도하고 있다. 게다가 이 모든 프로그램이 무료이니, 뉴욕공립도서관은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나는 행복하다. 그래서 이 행복을 앞으로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지난 25년 동안 사서로 일하며 쌓아온 경험과 연구에 대한 열정을 담아…
맨하탄 42가에 자리한 뉴욕공립도서관 전경. ⓒThe New York Public Library.
글 | 유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