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쓰는 일기][여행] 해녀의 삶으로 초대하는 공간, 제주해녀박물관

2025-06-23

섬에서 쓰는 일기 #5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해녀들의 물질과 다르지 않지요.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검푸른 바다로 자맥질해 들어가야 하는 일.
그 심연에서 더는 버틸 수 없을 때까지 숨을 참는 일.
제 몫의 생활을 꾸려간다는 건 그런 것일 테니까요.

- 허은실,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중


24f1fcf860931.jpg<여자>, 프로젝트 그룹 '씨앗', 폐해녀복·바다유목 등 혼합재료, 2019.


시인의 표현을 따른다면, 해녀박물관에 가는 일은 내 몫의 삶을 꾸려가는 법에 관해 뭐라도 배우자는 것이렸다. 부끄럽지만, 심기일전하자는 내 의지는 아니었다. 해녀박물관으로 목적지를 정한 것은 초등학생 아이였다. 섬에서 살던 대로 살며 거의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는 나와 달리 아이는 교실에서 듣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 우리처럼 육지에서 내려 온 아이들이 뒤섞인 교실에서는 각자의 경험이, 제 집에서 보고 들은 소식들이 우당탕탕 부딪히기 마련이다. 제주는 설문대할망이 만들었대, 설문대할망이 오름도 만들었는데 제주의 오름은 모두 368개래, 4.3이라는 아픈 일이 있었대, 제주에서 용과도 자란대, 누구는 지네를 키우는데(!) 하도 물려서 이젠 아프지도 않대. 학교에서는 과학탐구체험관도 갔다가 제주 설화도 이야기했다가 이 섬의 역사를 배우기도 한다. 육지와 다른 섬 생태계에 관한 공부도 한다. 그 교실에 내가 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아무튼 해녀박물관으로 목적지를 정한 것도 아이로서는 제주를 알아가려는 방식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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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해녀박물관은 해녀의 삶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제주에는 공립이든 사설이든 박물관이 참 많은데, 박물관이라는 곳이 참 그렇다. 업이 업인지라 박물관도 공간과 전시물로 한 권의 책을 쓰려는 노력의 결과물처럼 보인다. 워드프로세서에 타닥타닥 뭘 쳐 넣는 일도 버거운데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니? 게다가 쓰는 사람으로서든 편집을 하는 사람으로서든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주제가 있기 마련인데, 나에게는 해녀가 제주에 관한 한 가장 어려운 주제 중 하나다. 그분들에 비하면 나는 뭐 하나 제대로 살아보지도 않은 미물처럼 느껴져서다. 그런데 해녀에 관한 박물관이라니, 뻔뻔스럽게 신분증을 내밀고 도민할인을 받으면서도(성인 입장료가 1,100원인데 550원 할인을 받으려고) 이곳을 볼 준비가 안 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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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b2d2afdeb1.jpg제주에서 흔히 입던 갈옷. 물을 깃던 항아리 물허벅


제주해녀박물관은 세 전시실로 나뉜다. 해녀의 생활, 해녀의 일터, 해녀의 생애. 아마도 매일 집안일을 하면서 물질로 경제 활동까지 해야 했던 근면한 나날 속에서 세 주제는 서로 구분이 안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책 한 권으로 정리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전기를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관람객을 잠시나마 해녀의 삶으로 초대하는 공간의 서사 역시 마찬가지다. 전시장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해녀의 집 지붕에는 박으로 만들던 테왁이 매달려 있다. 요즘은 스티로폼으로 대체된, 부력으로 몸을 띄우는 도구다. 이게 왜 지붕에 달려 있나 했더니 학예사의 설명으로는 아이들이 공처럼 차고 놀다가 깨뜨리지 않게 하려고, 아하 애들은 예나 지금이나 참 천방지축이군요, 아무튼 박을 부서트릴 위험 요소가 천지인 땅에서 떨어트리려고 높이 매달은 거란다. 실로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이유였다.


35ee4f7b31ed1.jpg전시실에 재현된 해녀의 집, 작업장


해녀와 관련된 제주 생활사를 보여주는 제1전시실을 벗어나 계단을 오르면 본격적으로 해녀가 물질에 쓰던 도구, 해녀공동체에 관한 전시가 제2전시실에서 이어진다. 꽤 넓은 전시 공간을 불턱을 재현하는 데 쓰고 있는데,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거나 작업 중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누가 들여다보지 못하게 둥글게 돌담으로 둘러싼 형태이며, 지금도 제주 바닷가를 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물질에 대한 지식이나 요령, 해산물이 잘 잡히는 바다밭에 관한 정보를 공유했고, 각 어촌계의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기도 했단다. 불턱은 해녀들의 휴식처이자 아고라였던 것이다.


baf8a3ef4aab9.jpg전시실에 재현된 불턱


모닥불 앞에서 몸을 말리며 조언과 격려, 쓴 소리와 농을 주고받았을 여인들의 모습을 그려보다가 아차, 남자는 여기 얼씬도 못했겠지, 허둥지둥 발길을 옮기면 해녀들의 물옷과 물질 도구가 전시장 벽면에 빼곡하다. 고무 잠수복이 도입되기 전 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입던 속옷을 ‘물소중이’라 하는데, 밀가루 포대를 재활용해 만든 내의 앞에서 잠시 말을 잃는다. 이건 정말 피부에 달라붙는 현실의 것이다. 프라이탁의 비전이 번듯한 라이프스타일이 될 때, 밀가루 포대로 만든 속옷은 알뜰함과 실용성이라는 삶의 필요에 가만히 부응할 뿐이다. 불턱에 앉아 포대로 된 물소중이를 말리며 이 옷을 기증한 삼춘은 어쩐지 뿌듯하게 웃었을 것만 같다. 이게 내 몫의 생활을 꾸려가는 방식이라고.


9b93eb7cd594e.jpg278e980215860.jpg밀가루 포대로 만든 물소중이. 고무 잠수복은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세화항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들렀다 내려온 제3전시실에서는 실제 해녀들의 증언이 담긴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해녀의 생애, 집합 명사로 뭉뚱그려졌던 개인이 각각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이름도, 생김새도, 잠수를 하며 먹여 살려야 했던 남편과 아이들도 저마다 다른 개별자였지만, 물질을 해야 했던 이유는 똑같았기에 해녀의 삶을 공유해야 했던 이들. 나는 “심연에서 더는 버틸 수 없을 때까지 숨을 참는” 느낌으로 살아보기는 했는지. 먹고살기 위해 제주를 떠나 육지의 연안으로, 일본으로, 더 멀리 중국과 러시아로 바깥물질을 떠났던 해녀들의 수를 헤아린 통계를 보면서 하릴없이 헛기침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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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박물관은 꽤 넓은 공원을 끼고 있다. 바닷가에서도 녹지 휴식은 필요한 법이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점점이 흩어진 가운데, 이곳을 목적지로 정한 당사자는 땅에 그려진 사방치기 판에서 열심히 뜀뛰기를 한다. 비슷한 나이였을 때 나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그 놀이를 학교에서 친구들과 해 보았단다.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오자고 했던 해녀박물관에 와서 어땠느냐고 물어볼 새도 없었다. 뭐, 체험학습 보고서를 써야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제 몫으로 느낄 만큼 스스로 느끼며 걸었겠지. 우리가 지금 여기서 뛰어노는 것이 누군가의 자맥질 없이 그냥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다고, 어쩐지 불턱처럼 둥그런 탑을 세운 박물관을 되돌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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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녀박물관
제주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길 26
09:00~18:00 (매표는 17:00까지, 월요일 휴무)




글·사진 |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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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litt.ly/ecrire_lire_viv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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