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icily - Taormina |
1787년 봄, 괴테는 타오르미나의 고대 그리스 극장에 앉아 있었다. 그가 사랑한 고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그곳에서, 그는 “지상 낙원의 문 앞에 섰다”고 썼다. 200년이 지난 현재, 우리 역시 그 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타오르미나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
타오르미나는 작지만 밀도 높은 도시이다. 고대 유적, 돌담길, 가파른 언덕과 해안 절벽, 그리고 그 사이를 부드럽게 흐르는 바람과 햇살. 이 도시의 리듬에 맞추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아침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방식으로 시작하게 된다.

타오르미나에서 하루를 시작하며
| 밤 바(Bam Bar)
시칠리아 사람들은 아침에 뜨거운 커피보다 그라니따(Granita)를 즐긴다. 살얼음처럼 곱게 간 얼음에 생과일이나 견과류를 갈아 넣고, 설탕과 버터로 맛을 낸 둥근 빵인 브리오슈(brioche)와 함께 먹는 게 일반적이다. 처음엔 낯설게 느껴졌지만, 이곳의 습하고 더운 기후에 딱 맞는 선택이다.
시칠리아의 매력적인 음료 그라니따
그중에서도 타오르미나에서 유명한 곳은 밤 바다. 시내 중심에서 가까워 접근성도 좋기 때문에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가 찾는 그라니따 전문 카페다. 우린 세 번이나 밤 바를 찾았다.
밤 바의 그라니따
그라니따는 한국의 슬러시와 비슷하지만, 인위적인 단맛 대신 재료 본연의 맛이 제대로 살아 있다. 위에 얹은 생크림도 무겁지 않고 고소해서 조화롭다. 특히 Bam Bar의 좋은 점은 두 가지 맛을 선택 할 수 있어서 원하는 조합의 그라니따를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카페 안은 화사한 타일 장식과 손그림이 가득한 벽, 파란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진 시칠리아풍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다. 조금은 유쾌하고, 조금은 정열적인 색감 속에서 그라니따를 천천히 떠먹는 일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작은 여행 같았다.

그라니따는 취향에 따라 다르게 즐길 수 있고, 밤 바는 메뉴 구성도 다양해서 기회만 된다면 여러 번 가 보길 추천한다. 화려한 실내에 앉아서 먹는 맛과 시칠리아의 뜨거운 태양을 피한 테라스에서 먹는 맛이 다르다는 것도 이곳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이다.
밤 바 내부
Bam bar
Via di Giovanni, 45, 98039 Taormina ME, 이탈리아
https://maps.app.goo.gl/iYEKnnjoda4nZxcDA
영업시간: 매일 7:30- 21:00 (월요일 휴무)
* * *
| 빌라 주카로(Villa Zuccaro)
밤 바에서 더운 몸을 식혔다면 타오르미나 중심 쇼핑 거리를 걸어보자. 걷다 보면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식당을 만나게 된다. 그 문 앞에 서면 누구나 사진을 찍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아름다워 눈길을 사로잡는, 빌라 주카로(Villa Zuccaro)다.
빌라 주카로
우리는 처음엔 사진을 찍으러, 두 번째엔 음식을 먹으러 그곳으로 향했다. 예약을 하고 가니 도착하자마자 친절한 직원이 식전주를 내주며 반겼다. 이런 작은 배려가 식당의 첫인상을 한층 따뜻하게 만들었다.
자리는 정원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안쪽 자리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입구 근처 등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와인이 가지런히 진열된 선반 옆에 앉아 한 접시 한 접시 세심하게 플레이팅된 음식을 제공 받았다. 눈으로도 즐길 수 있을 만큼 예쁜 플레이팅이었다. 이렇게 고급스럽지만, 실제로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분위기도 이 식당의 매력이다.
빌라 주카로의 실내
점심 메뉴로는 주황빛 소스가 뿌려진 신선한 생선 요리, 바삭함이 살아 있는 오징어 튀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가지 요리인 파스타 알라 노르마를 주문했다.
식전 빵, 생선요리, 오징어 튀김
파스타 알라 노르마는 부드럽게 조리된 가지와 상큼한 토마토 소스가 어우러진 전통 시칠리아 파스타로, 이름은 시칠리아섬의 카타니아 지역 출신의 작곡가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에서 유래했다. 우리가 며칠 전 카타니아에서 벨리니의 무덤과 박물관을 방문했던 터라, 그 의미가 더욱 깊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인 ‚벨칸토(Bel canto) 시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빈첸쪼 벨리니Vincenzo Bellini(1801-1835)와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후대들이 그의 작품 제목을 따 만든 요리라니. 맛있을 수밖에 없는 서사 아닌가.
파스타 알라 노르마
함께 나온 바게트 조각을 가지 요리 위에 올려 먹으니, 마치 브루스케타처럼 고소하고 신선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오징어 튀김 역시 통통한 식감은 아니었지만 바삭한 튀김에 레몬을 살짝 뿌려 먹자 바다의 도시에 온 게 실감이 났다.
와인도 함께 즐기자
Villa Zuccaro Pizzeria Taormina
Piazza Carmine, 5, 98039 Taormina ME, 이탈리아
https://maps.app.goo.gl/TR6TAYmArbUkLH2H9
영업시간: 매일 12:00- 23:30 (토요일은 24:00까지)
* * *
| 사포리 디 마레(Sapori di Mare)
관광객이 북적이는 메인 거리에서 벗어나 식사를 하고 싶다면 사포리 디 마레(Sapori di Mare)가 제격이다. Castelmola로 올라가는 버스 정류장 바로 근처에 있는 이 식당은 중심 거리에서 살짝 떨어져 있어 다소 조용한 분위기다.

사포리 디 마레
겉모습이나 인테리어가 세련되거나 감각적인 느낌은 아니지만, 오히려 오래된 가게 특유의 안정감과 신뢰가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지배인처럼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와 주방에서 잠깐 얼굴을 내민 할아버지를 보면 ‘여긴 맛있겠다’는 확신이 절로 든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한국이들에게도 호평이 많은 해산물 파스타다. 우리가 이곳을 처음 찾은 이유 역시 한국인들에게도 호평이 많았던 해산물 파스타 때문이었다.


해산물 요리, 파스타
국물에 은근히 매콤한 맛이 돌아, 느끼한 음식을 며칠간 먹어온 입맛을 환기시켜 준다고 해서 기대하며 주문했다. 하지만 막상 먹어보니 우리 입엔 그 ‘매콤함’이 아주 ‘살짝’이었다. 그래서 혹시 매운 소스가 따로 있냐고 물었더니, 지배인 아저씨가 웃으면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빨간 고추가 가득 담긴 고추오일을 꺼내 와 마음껏 넣어 먹으라고 한다. 이처럼 세심한 배려에 음식 맛에 대한 믿음도 더 커졌다.

“맘껏 넣어 먹으라”며 우리 테이블에 내려놓은 고추 오일
그날 이후, 우린 이 식당을 총 세 번이나 다시 찾았다.
음식은 전반적으로 양이 많고 맛도 훌륭했다.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파스타나 피자 종류를 추천하고 싶다. 특히 우리는 이탈리아 여행 동안 수많은 피자를 먹었지만, 이 집에서 먹은 콰트로 포르마지(네 가지 치즈 피자)는 단연 최고였다.
콰트로 포르마지 피자
디저트
가격대도 합리적인 편이다. 중심가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는 점과, 친근한 서비스,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까지. 사포리 디 마레는 여행 중 ‘다시 가고 싶은 집’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그런 곳이었다.
여담으로 우리는 이 식당에 총 세 번을 갔는데 갈 때마다 아저씨는 우리를 기억하고 별말 없이 그 고추오일을 가져다주었다. 한국인은 정말 매운 걸 잘 먹는다고, 대단하다며 웃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행 중 단골이 된 사포리 디 마레
Ristorante Sapori Di Mare
Viale S. Pancrazio, 26, 98039 Taormina ME, 이탈리아
영업시간: 매일 11:00- 22:30 (목요일 휴무)
* * *
| 카스텔몰라(Castelmola) , 그리고 피제리아 니나(Pizzeria Nina)
타오르미나는 크게 해안가(Giardini Naxos), 언덕 위 중심부, 그리고 그보다 더 높은 전망 지역(Castelmola) 세 구역으로 나뉜다. 중심부에서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타오르미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작은 마을 카스텔몰라(Castelmola)가 나온다. 작고 조용한 이 마을은, 타오르미나보다 훨씬 한적하고 로컬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탁 트인 전망대에서는 에트나 화산과 바다, 그리고 타오르미나 시내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타오르미나 중심부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오르면, 마을 전체가 전망대처럼 펼쳐진 조용한 언덕 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을 입구에 가장 먼저 보이는 식당, 그곳이 바로 바로 피제리아 니나(Pizzeria Nina)다.
피제리아 니나
너무 눈에 띄는 위치라 처음엔 단순한 관광객용 식당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식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압도적이다. 탁 트인 전망을 갖춘 외부 테라스에서 와인 한 잔을 앞에 둔 여행자들이 햇살 아래 여유를 즐기는 모습도 호기심을 부추긴다. 이끌리듯 우리도 식사를 위해 아늑한 실내로 들어섰다.
피제리아 니나의 실내
실내는 앤티크한 소품과 오래된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지나치게 연출된 분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진짜 마을 식당’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벽 한쪽에 놓인 쿠키, 티백, 엽서, 소형 와인 병 등 소박한 기념품들조차 오래 이곳을 지켜온 내공처럼 여겨진다. 이모와 삼촌이 운영하는 오래된 동네 식당처럼 부담 없이 몸을 맡기고 싶어지는 그런 공간이다.
실제로 피제리아 니나는 한낮엔 관광의 시작점이고, 밤엔 관광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마을의 안주인 같은 역할을 한다. 막차를 기다리던 밤,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을 때도 이곳은 끝까지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 풍경이 이곳이 단순한 ‘관광 식당’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마을의 얼굴’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식당에서 보는 뷰가 아주 아주 좋다.
음식도 맛있었다. 브루스케타가 정말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고 피자도 꽤 괜찮다. 무엇보다 따뜻한 식사와 함께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마을과 바다의 풍경은 이 식사를 단순한 한 끼가 아닌 기억에 남을 경험으로 만들어준다.

피자와 브루스게타
Pizzeria Nina
Via Tutti I Santi, 98030 Castelmola ME, 이탈리아
https://maps.app.goo.gl/Y38Z8CuKR1SbneEn8
영업시간: 매일 8:00- 22:00
* * *
타오르미나에서 보낸 며칠 동안 살인적인 물가에 잠시 놀라기도 했지만, 언덕 위에서 풍경을 내려다볼 때마다 그런 걱정은 단숨이 잊혔다. 여행에서 쓰는 돈이, 그 순간의 감동을 사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태양은 뜨겁고, 공기는 습하며, 돌계단은 가파르지만 그 모든 것이 오히려 타오르미나의 감각과 삶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 덥고 건조한 날씨 속에서 시칠리아 사람들은 그들만의 경쾌한 칸초네를 만들었고, 눈부신 색의 조합으로 특별한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 땅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세상에 남기게 했다.

타오르미나의 풍경
그래서 생각했다. 내 삶에도 뜨거운 태양처럼,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마주해야 하는 시간들이 찾아오겠지만, 그조차도 언젠가 나만의 색을 만들어줄 수 있겠다고. 아픔과 무게를 감싸 안고, 그것을 나답게 녹여낼 수 있기를.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여행지로,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일터로 기억되기도 할 이곳. 사람과 맛, 그리고 태양이 오가는 시칠리아는 언제나 그 뜨거운 열정과 낭만으로 당신을 반겨줄 것이다.

’O sole, ’o sole mio
그 태양, 나의 그 태양
Sta ’nfronte a te! sta ’nfronte a te!
그것은 바로 너의 얼굴 안에 있어!
- 이탈리아 남부의 대표적인 칸초네 <오 솔레 미오> 중
글·사진 | 강희

강희는 프라하 음악 예술 아카데미 성악과 최초 한국인 졸업생이다. 체코어와 고군분투 하며 체코를 넘어 전세계를 정복 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https://www.instagram.com/sop_hee_
| Sicily - Taormina |
1787년 봄, 괴테는 타오르미나의 고대 그리스 극장에 앉아 있었다. 그가 사랑한 고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그곳에서, 그는 “지상 낙원의 문 앞에 섰다”고 썼다. 200년이 지난 현재, 우리 역시 그 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타오르미나는 작지만 밀도 높은 도시이다. 고대 유적, 돌담길, 가파른 언덕과 해안 절벽, 그리고 그 사이를 부드럽게 흐르는 바람과 햇살. 이 도시의 리듬에 맞추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아침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방식으로 시작하게 된다.
| 밤 바(Bam Bar)
시칠리아 사람들은 아침에 뜨거운 커피보다 그라니따(Granita)를 즐긴다. 살얼음처럼 곱게 간 얼음에 생과일이나 견과류를 갈아 넣고, 설탕과 버터로 맛을 낸 둥근 빵인 브리오슈(brioche)와 함께 먹는 게 일반적이다. 처음엔 낯설게 느껴졌지만, 이곳의 습하고 더운 기후에 딱 맞는 선택이다.
그중에서도 타오르미나에서 유명한 곳은 밤 바다. 시내 중심에서 가까워 접근성도 좋기 때문에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가 찾는 그라니따 전문 카페다. 우린 세 번이나 밤 바를 찾았다.
그라니따는 한국의 슬러시와 비슷하지만, 인위적인 단맛 대신 재료 본연의 맛이 제대로 살아 있다. 위에 얹은 생크림도 무겁지 않고 고소해서 조화롭다. 특히 Bam Bar의 좋은 점은 두 가지 맛을 선택 할 수 있어서 원하는 조합의 그라니따를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카페 안은 화사한 타일 장식과 손그림이 가득한 벽, 파란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진 시칠리아풍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다. 조금은 유쾌하고, 조금은 정열적인 색감 속에서 그라니따를 천천히 떠먹는 일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작은 여행 같았다.
그라니따는 취향에 따라 다르게 즐길 수 있고, 밤 바는 메뉴 구성도 다양해서 기회만 된다면 여러 번 가 보길 추천한다. 화려한 실내에 앉아서 먹는 맛과 시칠리아의 뜨거운 태양을 피한 테라스에서 먹는 맛이 다르다는 것도 이곳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이다.
* * *
| 빌라 주카로(Villa Zuccaro)
밤 바에서 더운 몸을 식혔다면 타오르미나 중심 쇼핑 거리를 걸어보자. 걷다 보면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식당을 만나게 된다. 그 문 앞에 서면 누구나 사진을 찍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아름다워 눈길을 사로잡는, 빌라 주카로(Villa Zuccaro)다.
우리는 처음엔 사진을 찍으러, 두 번째엔 음식을 먹으러 그곳으로 향했다. 예약을 하고 가니 도착하자마자 친절한 직원이 식전주를 내주며 반겼다. 이런 작은 배려가 식당의 첫인상을 한층 따뜻하게 만들었다.
자리는 정원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안쪽 자리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입구 근처 등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와인이 가지런히 진열된 선반 옆에 앉아 한 접시 한 접시 세심하게 플레이팅된 음식을 제공 받았다. 눈으로도 즐길 수 있을 만큼 예쁜 플레이팅이었다. 이렇게 고급스럽지만, 실제로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분위기도 이 식당의 매력이다.
점심 메뉴로는 주황빛 소스가 뿌려진 신선한 생선 요리, 바삭함이 살아 있는 오징어 튀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가지 요리인 파스타 알라 노르마를 주문했다.
파스타 알라 노르마는 부드럽게 조리된 가지와 상큼한 토마토 소스가 어우러진 전통 시칠리아 파스타로, 이름은 시칠리아섬의 카타니아 지역 출신의 작곡가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에서 유래했다. 우리가 며칠 전 카타니아에서 벨리니의 무덤과 박물관을 방문했던 터라, 그 의미가 더욱 깊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인 ‚벨칸토(Bel canto) 시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빈첸쪼 벨리니Vincenzo Bellini(1801-1835)와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후대들이 그의 작품 제목을 따 만든 요리라니. 맛있을 수밖에 없는 서사 아닌가.
함께 나온 바게트 조각을 가지 요리 위에 올려 먹으니, 마치 브루스케타처럼 고소하고 신선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오징어 튀김 역시 통통한 식감은 아니었지만 바삭한 튀김에 레몬을 살짝 뿌려 먹자 바다의 도시에 온 게 실감이 났다.
* * *
| 사포리 디 마레(Sapori di Mare)
관광객이 북적이는 메인 거리에서 벗어나 식사를 하고 싶다면 사포리 디 마레(Sapori di Mare)가 제격이다. Castelmola로 올라가는 버스 정류장 바로 근처에 있는 이 식당은 중심 거리에서 살짝 떨어져 있어 다소 조용한 분위기다.
사포리 디 마레
겉모습이나 인테리어가 세련되거나 감각적인 느낌은 아니지만, 오히려 오래된 가게 특유의 안정감과 신뢰가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지배인처럼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와 주방에서 잠깐 얼굴을 내민 할아버지를 보면 ‘여긴 맛있겠다’는 확신이 절로 든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한국이들에게도 호평이 많은 해산물 파스타다. 우리가 이곳을 처음 찾은 이유 역시 한국인들에게도 호평이 많았던 해산물 파스타 때문이었다.
국물에 은근히 매콤한 맛이 돌아, 느끼한 음식을 며칠간 먹어온 입맛을 환기시켜 준다고 해서 기대하며 주문했다. 하지만 막상 먹어보니 우리 입엔 그 ‘매콤함’이 아주 ‘살짝’이었다. 그래서 혹시 매운 소스가 따로 있냐고 물었더니, 지배인 아저씨가 웃으면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빨간 고추가 가득 담긴 고추오일을 꺼내 와 마음껏 넣어 먹으라고 한다. 이처럼 세심한 배려에 음식 맛에 대한 믿음도 더 커졌다.
“맘껏 넣어 먹으라”며 우리 테이블에 내려놓은 고추 오일
그날 이후, 우린 이 식당을 총 세 번이나 다시 찾았다.
음식은 전반적으로 양이 많고 맛도 훌륭했다.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파스타나 피자 종류를 추천하고 싶다. 특히 우리는 이탈리아 여행 동안 수많은 피자를 먹었지만, 이 집에서 먹은 콰트로 포르마지(네 가지 치즈 피자)는 단연 최고였다.
가격대도 합리적인 편이다. 중심가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는 점과, 친근한 서비스,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까지. 사포리 디 마레는 여행 중 ‘다시 가고 싶은 집’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그런 곳이었다.
여담으로 우리는 이 식당에 총 세 번을 갔는데 갈 때마다 아저씨는 우리를 기억하고 별말 없이 그 고추오일을 가져다주었다. 한국인은 정말 매운 걸 잘 먹는다고, 대단하다며 웃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 * *
| 카스텔몰라(Castelmola) , 그리고 피제리아 니나(Pizzeria Nina)
타오르미나는 크게 해안가(Giardini Naxos), 언덕 위 중심부, 그리고 그보다 더 높은 전망 지역(Castelmola) 세 구역으로 나뉜다. 중심부에서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타오르미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작은 마을 카스텔몰라(Castelmola)가 나온다. 작고 조용한 이 마을은, 타오르미나보다 훨씬 한적하고 로컬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탁 트인 전망대에서는 에트나 화산과 바다, 그리고 타오르미나 시내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타오르미나 중심부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오르면, 마을 전체가 전망대처럼 펼쳐진 조용한 언덕 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을 입구에 가장 먼저 보이는 식당, 그곳이 바로 바로 피제리아 니나(Pizzeria Nina)다.
너무 눈에 띄는 위치라 처음엔 단순한 관광객용 식당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식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압도적이다. 탁 트인 전망을 갖춘 외부 테라스에서 와인 한 잔을 앞에 둔 여행자들이 햇살 아래 여유를 즐기는 모습도 호기심을 부추긴다. 이끌리듯 우리도 식사를 위해 아늑한 실내로 들어섰다.
실내는 앤티크한 소품과 오래된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지나치게 연출된 분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진짜 마을 식당’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벽 한쪽에 놓인 쿠키, 티백, 엽서, 소형 와인 병 등 소박한 기념품들조차 오래 이곳을 지켜온 내공처럼 여겨진다. 이모와 삼촌이 운영하는 오래된 동네 식당처럼 부담 없이 몸을 맡기고 싶어지는 그런 공간이다.
실제로 피제리아 니나는 한낮엔 관광의 시작점이고, 밤엔 관광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마을의 안주인 같은 역할을 한다. 막차를 기다리던 밤,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을 때도 이곳은 끝까지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 풍경이 이곳이 단순한 ‘관광 식당’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마을의 얼굴’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음식도 맛있었다. 브루스케타가 정말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고 피자도 꽤 괜찮다. 무엇보다 따뜻한 식사와 함께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마을과 바다의 풍경은 이 식사를 단순한 한 끼가 아닌 기억에 남을 경험으로 만들어준다.
* * *
타오르미나에서 보낸 며칠 동안 살인적인 물가에 잠시 놀라기도 했지만, 언덕 위에서 풍경을 내려다볼 때마다 그런 걱정은 단숨이 잊혔다. 여행에서 쓰는 돈이, 그 순간의 감동을 사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태양은 뜨겁고, 공기는 습하며, 돌계단은 가파르지만 그 모든 것이 오히려 타오르미나의 감각과 삶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 덥고 건조한 날씨 속에서 시칠리아 사람들은 그들만의 경쾌한 칸초네를 만들었고, 눈부신 색의 조합으로 특별한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 땅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세상에 남기게 했다.
타오르미나의 풍경
그래서 생각했다. 내 삶에도 뜨거운 태양처럼,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마주해야 하는 시간들이 찾아오겠지만, 그조차도 언젠가 나만의 색을 만들어줄 수 있겠다고. 아픔과 무게를 감싸 안고, 그것을 나답게 녹여낼 수 있기를.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여행지로,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일터로 기억되기도 할 이곳. 사람과 맛, 그리고 태양이 오가는 시칠리아는 언제나 그 뜨거운 열정과 낭만으로 당신을 반겨줄 것이다.
글·사진 | 강희
강희는 프라하 음악 예술 아카데미 성악과 최초 한국인 졸업생이다. 체코어와 고군분투 하며 체코를 넘어 전세계를 정복 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https://www.instagram.com/sop_hee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