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의 밥상][설렁탕] 추적추적, 가을비 세차게 내리던 날

2025-09-25



ⓒ비엔나의 미리작가


한낮 최고 온도의 정상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 오랜 세월 축적돼 온 기억과 적응이 다 쓸모없게 된 여름이었습니다. 더디게 다가온 가을, 절정의 온도에서 10도가 떨어지는 동안에도 더운 나라 스콜마냥 하루 한 때 습도를 꼬박꼬박 높여주던 굵은 비는 여전하네요. 가을비가 이리 잦았던가 싶은 날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취우부종조, 소나기는 하루 종일 올 수 없다는 성현의 말씀대로 거센 비는 종일에서 조금 모자란 만큼 쏟아붓다가 그쳤습니다. 신발, 양말, 몸에 걸친 전부를 흠씬 적시기에 꽤 여유로운 시간이었지요. 


추적추적, 빗물에 젖은 신발은 발목이 뻐근할 만큼 무거워지고, 그 와중에, 오뎅탕, 순댓국, 부침개, 뭐가 좋을까 생각했지요. 어울릴 친구가 없을까 머릿속을 뒤적여 보다, 이런 비에 누구를 불러내나, 그런데 또 거센 빗소리가 생각의 너저분한 곁가지를 잘라내 주는 것 같아 누군가와 이야기 나눈다는 생각마저 성가시어집니다. 



추적추적, 혜화문 근방에 살던 김첨지에게는 꽤나 운수 좋은 날씨였습니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 김첨지는 인력거꾼입니다. 인력거꾼들은 일본인이 소유한 인력거 회사에 소속되어 하루 번 돈의 40%를 회사에 납부해야 했지요. 그러니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아침 수저 내려놓기 무섭게 두 발을 굴러야 했지요. 


김첨지는 집을 나오자마자 근처 전찻길까지 가자는 손님을 만납니다. 혜화동 전찻길에 손님을 내려주자 학교 선생인 듯한 손님이 명륜동에 있는 동광학교까지 가자 합니다. 며칠째 벌이가 없던 김첨지에게 운수가 트이려나 봅니다. 학교 앞에 손님을 내려주자마자 학생 하나가 쭈볏쭈볏 남대문 정류소까지 얼마냐고 묻습니다. 김첨지는 일주일 벌이 되는 돈을 부르고서 히득히득 빗속을 달립니다. 창경궁을 지나 원남동을 지나 종로로 나갑니다. 추적추적한 날이 아니었다면 학생은 전차를 기다렸을지 모릅니다. 궂은 날이 가져다준 운수에 김첨지는 졸부나 된 듯 기뻐합니다.  


학생을 내려주고 운수 좋은 인력거꾼은 정류장 앞을 서성이며 손님과 흥정을 합니다. 그리고 또 덜컥 인사동까지 가자는 손님을 태웁니다. 집에서 달려온 길의 절반 정도 되는 길을 되돌아갑니다.  몸이 무거울수록 마음은 가볍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체한 것처럼 가슴을 짓누르는 두려움이 가시지 않습니다. 한 달 넘도록 기침을 하던 아내가 며칠 전에는 조밥을 허겁지겁 먹고 체하더니 오늘따라 유독 가슴앓이가 심하다며 일을 나가지 말라고 떼를 쓰는 겁니다. 생떼를 쓰는 아내에게 욕지거리를 하고 밖으로 나온 김첨지는 주머니를 두둑이 채우고서야 이제 집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부탁한 설렁탕을 사 들고 말이지요. 하지만 그 괜한 두려움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그는 술집에 앉아 귀가를 늦추며 허세를 부리고 소리를 지르고, 평소 배나 되는 술을 들이켜며 마음을 짓누르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창경궁과 종묘. 김첨지는 아마도 돈암동 - 혜화동 - 명륜동 - 원남동 - 종로 4가로 이어지는 전찻길을 따라 뛰었을 것이다. 


종로 1가를 지나 서대문 로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서울역이 생기기 전까진 종착지였던 남대문 정거장에서 손님을 내려준다.
인력거를 탄 학생이 인천으로 간다고 한 걸 보면 전차 정거장이 아니라 경인선이 들어오던 이곳이었을 것이다. 


그는 설렁탕을 들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아내는 말이 없습니다. 울다 지쳐 울음소리도 나지 않는 아기만 아내 옆에서 자지러지고 있을 뿐입니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애꿎게도 죽은 아내를 닦달하며 김첨지의 운수 좋은 날이 막을 내립니다.


아내는 속이 좋지도 않다면서 설렁탕 한 그릇만 사다 달라 합니다. 설렁탕 한 모금 들이켜면 막힌 속이 뚫릴 것 같습니다. 추적추적, 뼈마디가 으스스한 날이라 유난히 뽀얀 고깃국물이 절실해졌던 건지 모릅니다. 추적추적, 김첨지가 뛰었던 길을 따라 혜화문에서 혜화로터리, 창경궁, 원남동, 종묘, 인사동, 광화문, 서대문을 지나 옛 남대문 정거장이 있던 자리까지 걸어봅니다. 여기서 왔던 길을 되짚어 빗물에 담갔다 뺀 신발을 끌고 종로 1가 설렁탕집까지 걸어갑니다. 신발은 무거워도 마음은 가볍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빗물에 흠뻑 적신 건 다 설렁탕 한 그릇을 더 맛있게 먹어보려는 수작입니다.  


설렁탕은 1920년대 서울에서 막 유행을 하기 시작합니다. 싼값에 빠르고 푸짐하게 한 그릇 뚝딱 해치울 수 있는 경성 특산 서민 음식이었지요. 그래도 지금으로 치면 값이 꽤 나가는 소머리와 다리, 잡뼈를 넣고 고았으니 이만한 보양 음식이 없었지요. 그런데도 가격이 지금의 5,000원 돈, 이만한 식도락이 또 어디 있을까요. 1920년대 초반부터 서울에 설렁탕집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해 20년대 중반이 되면 약 100여 곳이 생겨납니다. 


종로 1가 이문설렁탕 1인 좌석에 앉아 휴지로 빗물을 설렁설렁 닦아 냅니다. 이문설렁탕이 이문옥이란 이름으로 개업했던 해가 1904년입니다. 지금 서울에 남아 있는 음식점 중 가장 오래된 곳이지요. 그 다음으로 시청역 근처에 1933년 개업한 잼배옥이 남아 있고요. 이문설렁탕은 공평동이 재개발되기 전까지 처음 장사를 시작했던 한옥에서 계속 영업을 해 오다 지금의 종각역 농협 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설렁탕집 하면 입구에 가마솥을 꺼내 놓고 누린내 나는 소 잡뼈들을 고아대는 풍경이 있었지요. 김첨지 시절부터 내려왔던 설렁탕 가게만의 호객 비법이었습니다. 그 누린내에 질색하는 사람도 많았지만요. 지금의 전집들이 전 부치는 커다란 팬을 지나는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창가 바로 아래 두는 것도 그런 이유 아니겠어요.



누릿, 꼬릿한 냄새 때문에 설렁탕 가게 식탁에는 파와 고춧가루가 놓여 있지요. 설렁탕의 단짝 깍두기 한 접시도 100년 전 모습 그대로고요. 오래된 설렁탕의 역사와 함께해 온 이것들 말고, 국물에 잠겨 있는 국수사리는 60년대, 70년대 혼분식 장려 운동의 산물일 겁니다. 설렁설렁 끓여서인지, 맛이 설렁설렁해서인지 이름도 참 설렁설렁합니다. 고기에 맹물을 넣고 끓이는 몽골 음식 수루, 술루에서 유래되어 설렁탕이라는 말도 있고, 조선시대 선농단에서 제를 지내고 소를 끓여 먹었다고 해서 설렁탕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를 통틀어 민간에서 소를 함부로 잡아먹을 수 없었고, 소고기와 잡뼈를 넣어 끓인 음식에 관한 기록도 없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어디에도 소를 잡아 끓여 나눠 먹었다는 이야기가 없고요. 이름조차 설렁설렁 갖다 붙인 이 국물은 빛깔마저 설렁설렁 희멀겋습니다. 하지만 첫 수저 뜨면 끈적한 고깃국물이 구수, 누릿한 향기를 꼭 안고 있고, 국물에 밥알을 조금 담가 입에 넣고 깍두기를 씹으면 위장과 등골에 제법 품위가 돕니다.  



추적추적, 가는 빗방울이 인사동 바람 따라 나부끼고, 가을비 젖은 오래된 서울 길을 걸어 집으로 갑니다. 따뜻한 국물로 가슴을 저릿하게 달구고 나니 김첨지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그런대로 운수 좋은 가을날을 보내며, 이 가을은 또 어떤 겨울에 닿게 될까 마음의 옷깃을 단단히 여며 봅니다. 



글 · 사진 | 이주호

브릭스 매거진의 편집장. 『정말 있었던 일이야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사뿐사뿐, 노자네 집까지』 등을  쓰며 맥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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