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이 시작한 빵 일기 #4
나는 올리브가 싫다. 과도하게 세련되고 복잡미묘한 맛에 매번 압도되기 때문에. 건포도는 더 싫다. 멀미가 날 듯 지독하게 단 모래알 젤리를 씹는 것 같아서. SFBI(San Francisco Baking Institute) 2주 차의 어느 날, 올리브빵과 건포도호두빵을 함께 굽게 되었다. 재료 개량을 하며 한껏 들뜬 수강생들 사이로 “혹시 올리브 안 좋아하는 사람 있나요?”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조용히 손을 든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내친김에 “사실 건포도도 안 좋아해요” 커밍아웃하니 “내 손주랑 똑같다”라며 조원 D가 웃었다.
D는 키가 훤칠해서 청바지와 러닝화가 잘 어울리는,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였다. 한편 D와 함께 온 B는 아담하고 가녀린 체형이었는데, 그 역시 비대칭 쇼트커트에 날씬한 멋쟁이라 할머니라 칭하기 영 어색했다.
출처: 숏앤심플 사워도우 인스타그램
2주 차 첫날, 앞으로 실습을 함께하게 될 조원을 정할 때 신속하고 효율적인 실습을 위해서 최연장자인 듯한 B와 D는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같은 조가 되자 실습에 많이 뒤처지지 않으려면 내 몫을 부지런히 마치고 빨리 B와 D를 거들어야겠다고 나름 그럴싸한 작전까지 세웠다. 내가 교복을 입던 시절부터 미국 전역을 돌며 함께 베이킹 강의를 수없이 수강한 대선배라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당연히 앞서야 할 체력에서도 당해낼 수 없었다. 고된 일과 후 숙소 수영장에서 와인과 치즈를 즐기고, 밤 11시에 갑자기 감자튀김을 먹어야겠다며 시내로 향하던 그들과 매일 해 지기가 무섭게 녹초가 되어 곯아떨어지던 나. 내가 이토록 얄팍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었나? 부끄러웠다.
(왼쪽부터) 실습 중인 B, 나, D
베이킹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공식적으로 첫발을 내디딘 후,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 경우가 많았다. 꽤나 늦은 나이에 베이킹을 시작했으니 수강생 대부분이 나보다 어릴 줄 알았다. 하지만 은퇴 후 창업 준비를 하거나 자녀들이 모두 독립하여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러 온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나 아주머니, 밀을 재배하는 가족 농장에서 제빵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해 보려는 청년 등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나는 가장 어린 축에 속했다. 수강생들의 사연도 가지각색이라 사람이라면 일단 피하는 것이 본능인 나의 흥미까지 불러일으켰다.
특히 숨은 BBQ 노포 맛집의 장인이 틀림없을 듯한 덩치 큰 H는 다소 무서운 인상이라 인사를 건넬 때도 조금 용기가 필요했는데, 실상은 미소가 수줍은 10년 경력의 파티시에라는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1주 차부터 같은 조원으로 지내며 친해진 E의 첫인상은 치어리더 출신 뷰티 업계 종사자였지만, 알고 보니 그는 초엘리트인 치과의사. 고향 베네수엘라의 상황이 악화되어 몇 년 전 플로리다로 온 가족이 이주한 뒤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러 왔다고 했다. 어디 그뿐인가. 메이저리그 구단 관계자가 있는가 하면 베테랑 프로그래머도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들 역시 지구 반대편에서 베이킹을 배우러 온, 캘리포니아 억양의 영어를 하는 한국인을 신기해한다는 것이었다.
출처: 숏앤심플 사워도우 인스타그램
이토록 생소한 분야의 사람들과 의외의 접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하루는 잠이 조금 덜 깬 채 반죽기 속 반죽이 돌고 도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에게 D가 한국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다. 서울이라 하니 “오, 나도 70년대에 잠시 서울에 살았어요. 청량리에서요!”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 영어 선생님으로 2년 정도 한국에 머물며 경주와 부산에도 놀러 갔다고 한다. 금발의 미국 할머니에게 듣는 나의 70년대 고향 이야기는 색달랐다.
1주 차 수업을 함께 들으며 나만큼이나 질문을 열심히 했던 I는 서로 인스타 교환을 한 다음 날, 아침 인사 대신 메탈 밴드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본인은 젊었을 때 펑크 밴드에서 드럼을 쳤다고 말했다. 서로 드럼은 어려워서 절대 못 칠 것 같다, 베이스는 손가락이 아파서 안 되겠더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밴드 이야기로 한참 수다를 떨었다.
이십여 년 전, 이곳만큼이나 다채로운 사람들이 모였을 어느 베이킹 강의에서 처음 만난 이래 줄곧 베이킹을 함께하는 B와 D에게 “그런 인연이 정말 부러워요, 저는 베이킹 친구가 아무도 없거든요”라고 하니 그들은 “무슨 소리예요, 이제 우리가 있잖아요. 내년 심화 과정도 꼭 같이 들어요”라 말해주었다. 인사치레일 수 있을 그 말에도 평소라면 뒷걸음질부터 쳤을 내가 오즈의 마법사에게 심장이라도 받은 듯 따뜻한 감동을 느꼈다. 사람이 싫어 베이킹을 시작해 이곳에 오게 되었지만, 난생처음 베이커로서 만나 동료가 된 이들에게 어느새 마음을 열고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SFBI에서 구운 올리브빵과 건포도호두빵
나에게는 다소 유감스러웠던 올리브와 건포도의 날, E는 오븐에서 갓 나온 따끈한 빵을 베이킹랙으로 옮기며 “우리 조 올리브빵이랑 건포도호두빵은 제일 좋아하는 하영에게 모두 줘야겠어요”라며 웃었다. B와 D까지 합세하여 키득댔다.
“흥, 이제부터 평생 올리브나 건포도 빵을 보면 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을걸요?”
그들이 정말 그 빵을 보면 그때를 떠올리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먹지 못하는 올리브와 건포도를 보면 어린아이처럼 낄낄대던 셋의 모습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피식 웃게 된다.
한국으로 돌아와 복습하며 구운 올리브빵
* * *
:: 조하영 필자가 한국에 돌아와 오픈한 캘리포니아 사워도우 베이커리 '숏앤심플 사워도우'


출처: 숏앤심플 사워도우 인스타그램
글/사진 조하영

메탈코어 밴드 '노이지'와 '데이오브모닝'의 베이스를 맡고 있습니다.
연희동에서 숏앤심플 사워도우 베이커리를 운영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short.simple.sourdough/
겁 없이 시작한 빵 일기 #4
나는 올리브가 싫다. 과도하게 세련되고 복잡미묘한 맛에 매번 압도되기 때문에. 건포도는 더 싫다. 멀미가 날 듯 지독하게 단 모래알 젤리를 씹는 것 같아서. SFBI(San Francisco Baking Institute) 2주 차의 어느 날, 올리브빵과 건포도호두빵을 함께 굽게 되었다. 재료 개량을 하며 한껏 들뜬 수강생들 사이로 “혹시 올리브 안 좋아하는 사람 있나요?”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조용히 손을 든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내친김에 “사실 건포도도 안 좋아해요” 커밍아웃하니 “내 손주랑 똑같다”라며 조원 D가 웃었다.
D는 키가 훤칠해서 청바지와 러닝화가 잘 어울리는,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였다. 한편 D와 함께 온 B는 아담하고 가녀린 체형이었는데, 그 역시 비대칭 쇼트커트에 날씬한 멋쟁이라 할머니라 칭하기 영 어색했다.
2주 차 첫날, 앞으로 실습을 함께하게 될 조원을 정할 때 신속하고 효율적인 실습을 위해서 최연장자인 듯한 B와 D는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같은 조가 되자 실습에 많이 뒤처지지 않으려면 내 몫을 부지런히 마치고 빨리 B와 D를 거들어야겠다고 나름 그럴싸한 작전까지 세웠다. 내가 교복을 입던 시절부터 미국 전역을 돌며 함께 베이킹 강의를 수없이 수강한 대선배라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당연히 앞서야 할 체력에서도 당해낼 수 없었다. 고된 일과 후 숙소 수영장에서 와인과 치즈를 즐기고, 밤 11시에 갑자기 감자튀김을 먹어야겠다며 시내로 향하던 그들과 매일 해 지기가 무섭게 녹초가 되어 곯아떨어지던 나. 내가 이토록 얄팍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었나? 부끄러웠다.
베이킹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공식적으로 첫발을 내디딘 후,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 경우가 많았다. 꽤나 늦은 나이에 베이킹을 시작했으니 수강생 대부분이 나보다 어릴 줄 알았다. 하지만 은퇴 후 창업 준비를 하거나 자녀들이 모두 독립하여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러 온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나 아주머니, 밀을 재배하는 가족 농장에서 제빵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해 보려는 청년 등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나는 가장 어린 축에 속했다. 수강생들의 사연도 가지각색이라 사람이라면 일단 피하는 것이 본능인 나의 흥미까지 불러일으켰다.
특히 숨은 BBQ 노포 맛집의 장인이 틀림없을 듯한 덩치 큰 H는 다소 무서운 인상이라 인사를 건넬 때도 조금 용기가 필요했는데, 실상은 미소가 수줍은 10년 경력의 파티시에라는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1주 차부터 같은 조원으로 지내며 친해진 E의 첫인상은 치어리더 출신 뷰티 업계 종사자였지만, 알고 보니 그는 초엘리트인 치과의사. 고향 베네수엘라의 상황이 악화되어 몇 년 전 플로리다로 온 가족이 이주한 뒤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러 왔다고 했다. 어디 그뿐인가. 메이저리그 구단 관계자가 있는가 하면 베테랑 프로그래머도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들 역시 지구 반대편에서 베이킹을 배우러 온, 캘리포니아 억양의 영어를 하는 한국인을 신기해한다는 것이었다.
이토록 생소한 분야의 사람들과 의외의 접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하루는 잠이 조금 덜 깬 채 반죽기 속 반죽이 돌고 도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에게 D가 한국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다. 서울이라 하니 “오, 나도 70년대에 잠시 서울에 살았어요. 청량리에서요!”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 영어 선생님으로 2년 정도 한국에 머물며 경주와 부산에도 놀러 갔다고 한다. 금발의 미국 할머니에게 듣는 나의 70년대 고향 이야기는 색달랐다.
1주 차 수업을 함께 들으며 나만큼이나 질문을 열심히 했던 I는 서로 인스타 교환을 한 다음 날, 아침 인사 대신 메탈 밴드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본인은 젊었을 때 펑크 밴드에서 드럼을 쳤다고 말했다. 서로 드럼은 어려워서 절대 못 칠 것 같다, 베이스는 손가락이 아파서 안 되겠더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밴드 이야기로 한참 수다를 떨었다.
이십여 년 전, 이곳만큼이나 다채로운 사람들이 모였을 어느 베이킹 강의에서 처음 만난 이래 줄곧 베이킹을 함께하는 B와 D에게 “그런 인연이 정말 부러워요, 저는 베이킹 친구가 아무도 없거든요”라고 하니 그들은 “무슨 소리예요, 이제 우리가 있잖아요. 내년 심화 과정도 꼭 같이 들어요”라 말해주었다. 인사치레일 수 있을 그 말에도 평소라면 뒷걸음질부터 쳤을 내가 오즈의 마법사에게 심장이라도 받은 듯 따뜻한 감동을 느꼈다. 사람이 싫어 베이킹을 시작해 이곳에 오게 되었지만, 난생처음 베이커로서 만나 동료가 된 이들에게 어느새 마음을 열고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다소 유감스러웠던 올리브와 건포도의 날, E는 오븐에서 갓 나온 따끈한 빵을 베이킹랙으로 옮기며 “우리 조 올리브빵이랑 건포도호두빵은 제일 좋아하는 하영에게 모두 줘야겠어요”라며 웃었다. B와 D까지 합세하여 키득댔다.
“흥, 이제부터 평생 올리브나 건포도 빵을 보면 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을걸요?”
그들이 정말 그 빵을 보면 그때를 떠올리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먹지 못하는 올리브와 건포도를 보면 어린아이처럼 낄낄대던 셋의 모습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피식 웃게 된다.
* * *
:: 조하영 필자가 한국에 돌아와 오픈한 캘리포니아 사워도우 베이커리 '숏앤심플 사워도우'
글/사진 조하영
메탈코어 밴드 '노이지'와 '데이오브모닝'의 베이스를 맡고 있습니다.
연희동에서 숏앤심플 사워도우 베이커리를 운영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short.simple.sourd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