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래서 소년은 어른이 되었나요? - 아티스트 테즈 킴

2022-10-11

여기 한 소년이 있습니다. 귀엽기도 하고 까칠해 보이기도 하는 이 소년은 어쩐지 우리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아련한 기억을 끄집어 내기도 합니다. 조형과 회화, 영상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아티스트 테즈 킴의 작품인데요, 테즈 킴은 최근 2022 키아프+에 참여한 것은 물론 해외 아트페어에서도 주목 받는 작가입니다. 그를 만나 소년 시리즈와 아티스트의 작업 방식에 관해 들어보았습니다.


80ff82ffe5d72.jpg아티스트 테즈 킴


대학에서 금속조형디자인을 전공하고,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을 졸업했습니다. 미술을 좋아하고 공부했지만 전업 작가로 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예술과 직업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산업디자인을 배우며 타협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나 싶기는 하지만, 멀리 돌아온 길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3D프린팅으로 사업을 했어요. 인체를 스캐닝하고 3D프린팅을 해 주는 일을 했고, 아티스트들의 의뢰를 받아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어요. 현재 함께 일하고 있는 김현주 갤러리 관장님도 그때 알게 된 분이에요. 처음 제 작품을 만들어 보길 권하신 분도 관장님이고요. 


845b77c423f8a.jpg


소년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한 건 2020년부터였어요. 아주 힘든 시기를 보내며 제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돌이켜보게 됐어요. 나 왜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그때부터 기억을 더듬어 계속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는데, 어린 시절의 저와 지금의 제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더라고요. 실체는 달라졌을지 몰라도 성향은 바뀌지 않았다고 할까요. 저 자신에게 미안하고 동시에 따뜻해지기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의 소년 조형이나 그림을 보고 ‘캐릭터’냐고 물어보시는데, 사실 이름이 있는 특정한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이름 없는 이 소년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 순수한 시절, 순수한 인간의 상징이라 할 수 있어요. 소년이 등장하는 작품에 추상적인 면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단순히 캐릭터를 만들려는 게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기 때문이에요.


d9cb81c466e9f.jpg〈Let it go〉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인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요. 그래서 인간을 관찰하고, 흔히 말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인간성’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보니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을 추구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제 기억을 끊임없이 거슬러 올라가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소년을 만나게 된 거고요.


6cd9a384e194a.jpg


소년은 ‘인간성’에 관한 저의 정의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를 시각적으로 너무 난해하거나 심각하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보시는 분들이 귀엽다고 좋아해 주시기도 하는데, 어느 정도 의도한 면이 있어요.


작품 속 소년이 어떤 ‘기억’의 순간에 놓여 있고, 그래서 제 작품이 기억에 대한 탐구처럼 보이는 면이 있는 것도 기억이 오래도록 쌓이고 중첩되면서 인간성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에요. 인간성을 정의한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지만, 예술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인간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적립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인간에게는 악하고 추한 면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해요. 


695ec33c10a43.jpg〈Albatross〉


74de61d7d3bf6.jpg〈The world that it's OK〉


6d08da254b17c.jpg〈I love you more than a ceiling〉


그런데 제 작품 속 소년이 조금 삐딱하거나 반항적으로 보이는 건, 순수한 이성이 처음으로 세상을 맞닥트릴 때 어떤 기분이고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어요. 순수한 소년에게 지금 세상이 얼마나 이상할까요? 우리는 왜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한때 소년이었던 우리도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 사회의 부조리, 불합리에 화를 내고 반항했어요. 소년과 어른 사이에 있는 시간을 잘라내고, 순수한 소년이 이 세상과 바로 만난다고 가정하면 찡그린 얼굴을 하는 게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 생각해요. 


9e8a6ac5836d2.jpg


〈필연적인 파괴〉는 『데미안』에서 에밀 싱클레어가 했던 말, 알은 하나의 세계이고,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는 말에 공감해서 만든 작품이에요. 자신을 찾는 일은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아요. 소년은 망치로 무엇인가를 깨부수며 부모와 학교, 사회로부터 교육받은 것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게 돼요.


a4af6670364e7.jpg〈Unavoidable Destruction〉


e91fea0f27639.jpg

〈Banana Thrower〉


소년이 바나나를 던지는 것도 순수한 이성이 부조리한 세상에 비폭력적인 저항을 하는 모습이에요. 뱅크시의 〈꽃을 던지는 남자〉의 오마주예요. 소년이 세상에 저항하며 던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말랑말랑하고 재밌고 달콤하고 웃고 있는 모양 같기도 하고 그걸 누구한테 던진다고 해서 아무도 다치지 않는, 파괴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은 물건. 하지만 뭔가 반항을 하고 싶고, 얘기는 하고 싶고, 그때 던질 수 있는 걸로 바나나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웨이 홈〉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 작품이 저는 지금까지도 가장 좋고 많이 그렸어요. 전체 바탕이 다 노란색이고, 약간 해가 진 서너 시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만난 빛에 대한 제 개인적인 강렬한 추억이 들어 있어요. 그 진한 추억 때문에 노란색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소년의 손에는 맥도날드 봉투가 들려 있는데, 초등학교 때 맥도날드 1호점이 저희 동네에 처음 생겼어요. 주문을 하려고 줄을 서면서 어떻게 주문을 해야 할지 두근두근하다가 드디어 맥도날드 봉투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갈 때의 기억이 강렬해요. 그 기억이 저에게는 정말 저 자신에 대한 많은 걸 상기시켜 주어요.


357dfa776fa85.jpg

〈Longing〉


6caa3d8111003.jpg


날개가 달린 소년 작품들은 두 번째 개인전에서 ‘우리가 날 수 있었던 시절’이라는 주제로 만든 작품들이에요. 우리는 다 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실제로 날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감정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정말 날 수 있었고, 고래 등을 타고 바다를 헤엄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고요. 


b13099b722696.jpg〈Voyage〉


지금은 11월 마이애미 아트페어에 출품할 작품들을 작업하고 있습니다. 소년이 언젠가 어른이 될까, 물으시는 분들이 있어요. 아직은 아닙니다. 소년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느낌보다는 우리 모두가 소년이었던 시절을 기억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계속해 나가려 해요. 소년은 우리가 겪어온 방식으로는 어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3d99f49a13e7e.jpg




인터뷰/편집 이주호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