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종합 예술입니다. 그중에서 '미술감독'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계셨나요? 시나리오를 시각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미술감독의 세계를 알아보기 위하여 브릭스 매거진에서 김초혜 미술감독을 만났습니다. 최근작만 훑어 보아도 <파친코>, <삼식이 삼촌>, <탁류> 등 어마어마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김초혜 미술감독의 세계. 그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김초혜 미술감독
Q. 미술감독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시나리오를 촬영 가능한 현실로 구현하고, 각 장면이 요구하는 감정과 분위기를 시각 언어로 번역하는 일입니다. 의상디자인, 분장디자인, 로케이션, 소품디자인, 색감 등 화면에 담기는 모든 시각 요소의 컬러와 조명을 계획하고 만들어 내요. 무대 위에서 등장인물을 어떻게 매치할지, 무대장치들을 어떻게 구성할지, 조명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모든 것을 총괄적으로 계획하고 만들어 갑니다.
시각적인 의미에 대한 관객의 의사소통을 돕고 스토리를 향상시킨다고 할까요, 극적인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서 전략을 짜기도 하고 소품을 사용하여 의미를 부여하기도 해요. 결국 프레임 안에 보이는 모든 미장센 요소들을 책임지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그럼 각 팀과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협업하시나요?
프로덕션 디자인의 핵심은 ‘일관된 시각 언어’를 만드는 거예요. 예를 들어 우선 캐릭터의 성격을 설정하고 의장, 분장, 스타일들을 만들어 내고, 그 인물이 머무는 공간의 커튼, 자주 쓰는 소품, 심지어 그 장면에 들어오는 빛의 색온도까지 미묘하게 연결시켜 관객이 캐릭터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요.
Q. 시나리오를 받으면 가장 먼저 무엇부터 시작하시나요?
캐릭터 분석부터 시작합니다. 이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파악하면서 그 인물이 살아갈 공간의 질감과 밀도를 설정해요. 저는 공간도 인물과 함께 연기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배우 분들이 세트에 들어오셔서 ‘여기서 내가 뭘 해야 할지 알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순간이 제가 일하며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예요. 공간과 배우가 함께하는 것이지요.
세트 작업이 들어가기 전
Q.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요일마다 저와 동생을 데리고 대학로 파랑새 극장에서 연극을 보여주셨어요. 한 달에 두 번은 꼭이요. 유니버설발레단 공연도 정기공연은 모두 봤고요. 그런데 보통은 배우나 발레리나를 보잖아요. 저는 무대가 전환되는 순간, 조명이 바뀌는 순간에 더 매료됐어요. 저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그게 궁금했어요. 그래도 이걸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그러다가 잔상이 오래 남는 영화들 몇 편을 보고 나서 영화를 통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그러면서 영화 <물랑루즈>를 보고 아, 내가 상상하던 것의 종합판이라고 생각하고 영화 현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물랑루즈>에서 화려함에 매료되었다면,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는 우아하면서도 정교한 울림을 받았어요. 한국적인 것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고 이걸 해야겠다 결심을 했어요. 그러면서 이 직업에 더 다가가게 된 것 같아요.
Q. 영화미술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시각미술을 전공하고 처음 시작은 방송국이었어요. 방송국에서 다양한 일을 접하면서 재미도 있었지만 미장센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영화로 옮겨보고 싶었어요.
Q. 작품 리스트를 보니 시대극 작업이 유독 많던데요.
그게 영화미술을 해보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장르이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 시대의 공기를 상상하고, 멈춰버린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하고, 사라진 감정을 되살려내는 과정이 저에게는 매우 매혹적이에요. 완성된 공간에서 배우들이 숨 쉬는 걸 보면, 이게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과거가 품었던 감정을 현재로 소환하는 일이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미 사라진 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0에서부터 만들 수 있다는 욕심과 재미가 있어요. 사극, 시대물은 아무래도 작업량이나 촬영 기간이 현대물보다 많기는 한데, 지금 없는 것, 사라진 것을 다시 만들어 본다는 게 재미있지요. 공방에 가면 누구나 의자 하나를 만들 수는 있잖아요.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의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왕이라든가 특정한 누군가가 앉았던 의자를 만들어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지요. 그때의 시간을 마음껏 상상해 보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사라진 감정을 다시 불러오는 과정을 마치면 한 시대의 공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아요. 그 공간 안에서 인물들이 살아 숨 쉬는 장면을 상상하면, 이 일은 단순한 재현이 아닌 지난 시대의 감정을 되살리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삼식이 삼촌> 촬영장 작업
그런 마음으로 작업한 작품이 <삼식이 삼촌>이에요. 삼식이 삼촌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해서 조각조각 남아 있는 자료들을 퍼즐 맞추듯 모아가며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에요. 알아보실지 모르겠지만, 삼식이 삼촌이 생활하는 공간인 제과점이나 사무실은 생활감이 깊숙이 묻어나도록 설계했고, 골목은 삼식이의 복잡한 심경처럼 인물들이 구불구불 미로처럼 다닐 수 있게 설계하고, 삼식이 삼촌이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건너편은 그의 욕망을 길 건너로 항상 바라보게 설정했어요. 그래서 그곳은 색채와 조명들이 많고 화려해요. 색의 기본은 미군정 시대 한국의 배경을 응용하여 표현했던 공간입니다.
방영일이 정해지는 드라마 특성상 겨울에 약 8천 평의 공간에 마을을 지었는데, 추운 날에 땅이 얼어서 작업이 중단되기도 하고, 페인트가 얼어서 작업을 못하기도 하고, 힘든 일이 정말 많은 현장이었어요. 하지만 결과가 잘 나오면 그간의 고통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이 이 직업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을 해내면서 시대물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기도 해요.

<삼식이 삼촌> 촬영장 작업
:: 김초혜 미술감독과의 인터뷰는 2편 이어서 읽기
인터뷰 | 이주호 · 신태진
영화와 드라마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종합 예술입니다. 그중에서 '미술감독'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계셨나요? 시나리오를 시각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미술감독의 세계를 알아보기 위하여 브릭스 매거진에서 김초혜 미술감독을 만났습니다. 최근작만 훑어 보아도 <파친코>, <삼식이 삼촌>, <탁류> 등 어마어마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김초혜 미술감독의 세계. 그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김초혜 미술감독
Q. 미술감독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시나리오를 촬영 가능한 현실로 구현하고, 각 장면이 요구하는 감정과 분위기를 시각 언어로 번역하는 일입니다. 의상디자인, 분장디자인, 로케이션, 소품디자인, 색감 등 화면에 담기는 모든 시각 요소의 컬러와 조명을 계획하고 만들어 내요. 무대 위에서 등장인물을 어떻게 매치할지, 무대장치들을 어떻게 구성할지, 조명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모든 것을 총괄적으로 계획하고 만들어 갑니다.
시각적인 의미에 대한 관객의 의사소통을 돕고 스토리를 향상시킨다고 할까요, 극적인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서 전략을 짜기도 하고 소품을 사용하여 의미를 부여하기도 해요. 결국 프레임 안에 보이는 모든 미장센 요소들을 책임지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그럼 각 팀과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협업하시나요?
프로덕션 디자인의 핵심은 ‘일관된 시각 언어’를 만드는 거예요. 예를 들어 우선 캐릭터의 성격을 설정하고 의장, 분장, 스타일들을 만들어 내고, 그 인물이 머무는 공간의 커튼, 자주 쓰는 소품, 심지어 그 장면에 들어오는 빛의 색온도까지 미묘하게 연결시켜 관객이 캐릭터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요.
Q. 시나리오를 받으면 가장 먼저 무엇부터 시작하시나요?
캐릭터 분석부터 시작합니다. 이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파악하면서 그 인물이 살아갈 공간의 질감과 밀도를 설정해요. 저는 공간도 인물과 함께 연기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배우 분들이 세트에 들어오셔서 ‘여기서 내가 뭘 해야 할지 알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순간이 제가 일하며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예요. 공간과 배우가 함께하는 것이지요.
Q.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요일마다 저와 동생을 데리고 대학로 파랑새 극장에서 연극을 보여주셨어요. 한 달에 두 번은 꼭이요. 유니버설발레단 공연도 정기공연은 모두 봤고요. 그런데 보통은 배우나 발레리나를 보잖아요. 저는 무대가 전환되는 순간, 조명이 바뀌는 순간에 더 매료됐어요. 저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그게 궁금했어요. 그래도 이걸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그러다가 잔상이 오래 남는 영화들 몇 편을 보고 나서 영화를 통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그러면서 영화 <물랑루즈>를 보고 아, 내가 상상하던 것의 종합판이라고 생각하고 영화 현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물랑루즈>에서 화려함에 매료되었다면,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는 우아하면서도 정교한 울림을 받았어요. 한국적인 것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고 이걸 해야겠다 결심을 했어요. 그러면서 이 직업에 더 다가가게 된 것 같아요.
Q. 영화미술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시각미술을 전공하고 처음 시작은 방송국이었어요. 방송국에서 다양한 일을 접하면서 재미도 있었지만 미장센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영화로 옮겨보고 싶었어요.
Q. 작품 리스트를 보니 시대극 작업이 유독 많던데요.
그게 영화미술을 해보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장르이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 시대의 공기를 상상하고, 멈춰버린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하고, 사라진 감정을 되살려내는 과정이 저에게는 매우 매혹적이에요. 완성된 공간에서 배우들이 숨 쉬는 걸 보면, 이게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과거가 품었던 감정을 현재로 소환하는 일이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미 사라진 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0에서부터 만들 수 있다는 욕심과 재미가 있어요. 사극, 시대물은 아무래도 작업량이나 촬영 기간이 현대물보다 많기는 한데, 지금 없는 것, 사라진 것을 다시 만들어 본다는 게 재미있지요. 공방에 가면 누구나 의자 하나를 만들 수는 있잖아요.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의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왕이라든가 특정한 누군가가 앉았던 의자를 만들어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지요. 그때의 시간을 마음껏 상상해 보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사라진 감정을 다시 불러오는 과정을 마치면 한 시대의 공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아요. 그 공간 안에서 인물들이 살아 숨 쉬는 장면을 상상하면, 이 일은 단순한 재현이 아닌 지난 시대의 감정을 되살리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삼식이 삼촌> 촬영장 작업
그런 마음으로 작업한 작품이 <삼식이 삼촌>이에요. 삼식이 삼촌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해서 조각조각 남아 있는 자료들을 퍼즐 맞추듯 모아가며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에요. 알아보실지 모르겠지만, 삼식이 삼촌이 생활하는 공간인 제과점이나 사무실은 생활감이 깊숙이 묻어나도록 설계했고, 골목은 삼식이의 복잡한 심경처럼 인물들이 구불구불 미로처럼 다닐 수 있게 설계하고, 삼식이 삼촌이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건너편은 그의 욕망을 길 건너로 항상 바라보게 설정했어요. 그래서 그곳은 색채와 조명들이 많고 화려해요. 색의 기본은 미군정 시대 한국의 배경을 응용하여 표현했던 공간입니다.
방영일이 정해지는 드라마 특성상 겨울에 약 8천 평의 공간에 마을을 지었는데, 추운 날에 땅이 얼어서 작업이 중단되기도 하고, 페인트가 얼어서 작업을 못하기도 하고, 힘든 일이 정말 많은 현장이었어요. 하지만 결과가 잘 나오면 그간의 고통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이 이 직업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을 해내면서 시대물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기도 해요.
<삼식이 삼촌> 촬영장 작업
:: 김초혜 미술감독과의 인터뷰는 2편 이어서 읽기
인터뷰 | 이주호 · 신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