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디자이너가 소개하는 아름다운 한국의 산사 - 윤설희 작가 인터뷰 #1

2024-01-11

비주얼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꾸준히 자신만의 주제로 책을 내고 있는 윤설희 작가. 그가 최근 전국 곳곳의 산사 100여 곳을 탐방하고 이를 소개하는 책, 『산사 안내서』를 출간했습니다. 디자이너가 바라보는 산사는 어떤 모습일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산사를 어떻게 소개했는지 윤설희 작가를 만나 들어보았습니다. ‘오늘의집’ 집들이에 소개됐을 정도로 뛰어난 인테리어 노하우까지 슬쩍 알아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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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설희 작가


Q. 최근 발간하신 『산사 안내서』는 어떤 책인가요?

종교가 없어도, 한국 건축에 대해 몰라도 볼 수 있는 한국의 산사 안내서입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거나 삼국시대 건축을 잘 모르면 산사에 들어가 보겠다고 마음먹기 어려워요. 들어가서도 어디를 봐야 하는지, 여기가 무엇이 다르고 어떤 특징이 있는 건지 인지하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산사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하는 책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총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한국의 절과 고건축에 대한 개요 설명과 사진이 담긴 『산사를 이해하기』, 제가 가장 좋았던 산사 5곳을 소개하는 『산사를 만나보기』, 그리고 제가 다닌 100여 곳의 산사를 설명하고 중국과 일본의 산사와도 비교하는 『산사를 찾아보기』가 한 세트입니다.


d5a2e2f8564ae.jpg4fa8a92a73a4b.jpg윤설희 작가의 『산사 안내서』


Q. 원래 산사를 자주 다니셨나요?

원래 산사에 관심이 있진 않았어요. 언젠가 저의 집을 짓겠다는 꿈은 있었는데, 그것도 서양식으로 짓고 싶었지요. 그러다가 문득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의 건축에 관해 이해한 다음 서양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국 건축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요.


궁궐이라든가 서원이라든가 하는 한옥 같은 경우는 조선시대 후기 건축물이 많아 300~500년 넘은 것 별로 없어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은 한국의 절에서 찾아볼 수 있지요. 지방 곳곳에 넓게 분포해 있어 절마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나 지형적 특징이 다른 점에서 재미를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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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망월사 ⓒ윤설희


7fe847ab86691.jpg화개산 도피안사 ⓒ윤설희


Q. 그런데 산사를 주제로 책을 만들기로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점에 가면 산사에 관한 책이 대단히 많아요. 하지만 종교가 없거나 옛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기에는 어렵지요. 그래서 낯설게 느껴지는 단어, 끝없이 나열되는 숫자를 조금 친숙하게 표현해 주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제 직업은 비주얼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입니다. 회사의 메시지를 커스터머에게 전달하고, 다시 커스터머의 목소리를 디자인에 반영하여 회사와 커스터머를 이어주는 게 저의 일입니다. 서점의 일반적인 산사책과는 다른 저만의 타깃이 되는 독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봤고, 저의 독자층에 맞는 정보를 인포메이션으로 보여주는 게 저의 장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산사 안내서』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7b3d4ccb411e7.jpg02f2438d56e3c.jpg08a8a01fdcc27.jpg『산사 안내서』를 펼치며 ⓒ윤설희


Q. 『산사 안내서』는 윤설희 작가님이 만드신 다섯 번째 책이지요? 제작 기간은 얼마나 되셨나요?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매년 책을 한 권씩 만들어보자고 다짐했어요. 그때까지 저는 무엇이든 대충 아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한 문단 이상으로 아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제 본래 성향과는 반대의 길을 걷기 위해 도전하는 분야가 바로 책을 집필하는 것이었어요. 처음엔 1년에 한 번씩 책을 만들었지만 제작 기간이 점점 늘어났어요. 제 네 번째 책은 홋카이도 여행책이었는데 2년이 걸렸어요. 이번 책을 만드는 데는 5년의 세월이 필요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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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부터 『산사 안내서』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직전 해 마침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한국의 산사 일곱 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어요. 그렇게 접한 산사가 너무 좋아서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싶어진 것이지요. 사실 국내 독자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소개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게 백여 곳이 넘는 산사를 다녔고, 중국과 일본의 산사도 다니며 국내 산사와 비교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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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혹은 가장 인상적이었던 산사는 어디였나요?

순천에 있는 선암사예요. 장소의 특색도 강하고 옛날 느낌도 잘 살려놨어요. 절이 개축과 보수를 거치며 커지다 보면 조악해지기도 하고 너무 현대적인 색감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선암사는 고즈넉한 느낌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국 건축의 장점을 많이 볼 수 있는 절이기도 하고요. 저는 장소가 사람의 무드, 감정 같은 것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선암사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그런 면이 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eb3ab7cde12e2.png『산사 안내서』 선암사 편에서 ⓒ윤설희


Q. 백 곳이 넘는 산사의 방문 리스트는 어떻게 만들었고, 자료 조사는 어떻게 하셨나요?

우선 산사에 관한 책들이 많은 도움이 됐고요, 말씀드렸던 유네스코 지정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일곱 곳이나 CNN 선정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사찰’ 서른세 곳 등 공식 선정 목록도 참고했습니다.


책과 인터넷으로 기본 정보를 얻은 후 산사를 직접 방문했어요. 문화해설사를 통해 정보를 얻기도 하고, 템플스테이가 가능한 곳에서는 템플스테이를 하며 스님들께 책을 쓴다고 말씀드리고 절에 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때 수치나 고유 명사 같은 정보보다는 그 장소가 갖고 있는 이야기에 더 주목했어요.


책을 제작하는 5년 중 답사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어요. 아무래도 산속에 있는 곳들이다 보니 자가용이나 KTX로 이동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지요. 그렇게 자료 조사와 답사에 3년, 그림 작업에만 몰두하는 데 2년이 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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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련산 보탑사 ⓒ윤설희


Q. 그림이 점묘화 같기도 하고요, ‘만화로 배우는 한국의 산사’를 표방하셨을만큼 만화 파트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리기로 하셨나요?

항상 책을 만들 때 매번 다른 소재로 그리자는 규칙을 정했어요. 연필로 그리거나 컴퓨터 그래픽을 쓰거나. 이번 책은 한국의 수묵담채화를 모티브로 삼아 펜을 사용하기로 했어요. 농도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점이라는 소재를 활용했고요.


저는 평소 테이블 위 돌이라든지 바닥에 놓인 자갈이나 나무라든지, 각 소재의 재질감을 표현하는 작업을 좋아해요. 저에게는 세상이 패턴이나 재질의 합으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보는 세상을 농밀하게 표현하는 게 제 그림의 아이덴티티라고 봐요. 이번 책의 그림도 획과 점으로 각각의 질감을 표현하려고 노력했고요.


7e740ae951d58.jpg윤설희 작가가 그린 선암사와 무량사 ⓒ윤설희


일본 작가 이노우에 히사시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어려운 건 쉽게, 쉬운 건 재미있게, 재미있는 건 깊이 있게.” 이전 작품인 『#4. 홋카이도』는 여행이라는 재미있는 요소였기 때문에 깊이 있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산사 안내서』는 산사가 어렵고 심오한 주제이다 보니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게 목표였어요. 만화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었고요. 그렇게 흑백만화와 수묵담채화를 섞은 그림으로 이 책을 엮은 거예요.


Q. 책에서 답사 과정이 만화로 표현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 산사가 좁은 지형에 건물을 놓다 보니 규모를 키우지는 못했어요. 작은 공간을 커 보이게 하는 방법이 복잡한 미로처럼 세우는 거예요. 다른 외국 관광지나 랜드마크들이 사진 한 장으로 대표된다면, 한국의 건축은 사진 한 장으로는 전체를 다 담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국의 공간을 경험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고, 시시각각 마주하는 공간의 서사를 보여주기 위해서 만화라는 양식이 적합했어요.


만화라는 양식을 통해 제가 산사를 다니면서 보는 시야들을 매 장면으로 보여줄 수 있어 좋았어요. 유현준 건축가가 한국의 건축을 장면의 중첩, 레이어로 표현한 것과 일맥상통할 수 있겠네요.


a9b3d6408947c.jpg답사 과정을 만화로 표현했다 ⓒ윤설희


또, 2권 『산사를 만나보기』 부석사 편에서 컷을 다 가운데로 정렬한 것처럼 각 산사의 특징을 만화의 레이아웃으로 표현하기도 했어요. 부석사로 들어가는 길이 계속 상승하는 구조거든요. 한편 선암사의 경우는 절의 구조가 복잡하다 보니 레이아웃도 다닥다닥 붙였어요. 시원시원한 전망이 있는 금산사는 가로로 길거나 세로로 긴 레이아웃을 주로 사용했고요. 


만화 자체를 처음 그려본 거라 만화가들이 보면 허점이 많이 보이겠지만, 제가 하는 일이 비주얼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다 보니 잔잔한 흐름에서 강렬한 장면으로 전환한다던가, 내용 전개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거나 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35b2b5184c1d3.jpg『산사 안내서』 중에서




인터뷰 신태진, 이은서 에디터
사진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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