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간과 질감을 사랑하는 밀도 있는 디자이너 - 윤설희 작가 인터뷰 #2

2024-01-13

:: 디자이너가 소개하는 아름다운 한국의 산사 - 윤설희 작가 인터뷰 #1 먼저 읽기


de5cdb93118de.jpg윤설희 디자이너 ⓒ윤설희


Q. 즐겨 사용하시는 화구는 무엇인가요?

일로 작업할 때는 아무래도 MAC(맥)을 가장 많이 쓰지만요, 사실 연필로 그림 그리는 걸 제일 좋아해요. ASMR처럼 소리로 힐링도 되고, 쓰기도 간편할뿐더러 농도 조절도 손쉬워 가장 선호합니다.


Q. 답사를 하실 때 기록은 어떻게 하셨나요?

우선 산사에 관해 충분히 사전 조사를 하면서 어떤 걸 알고 가야 하고 가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노트를 만들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노트에 추가해야 할 이야기를 정리하고요. 좋았던 산사는 다섯 번 이상 방문한 적도 있는데 계속 필요한 장면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그려야겠다 미리 구상한 장면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그림으로 옮겼어요.


486d43405b7d6.jpg금오산 향일암 ⓒ윤설희


cf245193f4d4b.jpg태조산 도리사 ⓒ윤설희


Q. 책 디자인, 패키지 디자인도 직접 하셨지요?

세 권의 책을 담는 상자는 불교 경전을 담는 ‘나전경함’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나전경함은 목제 상자에 나전칠기를 장식하고 종교적인 문양을 넣는 함이에요. 나전경함의 이미지를 차용해 책 상자를 디자인했어요. 또, 겉 문양으로는 꽃창살을 그래픽으로 만들어 넣었어요. 꽃창살은 주로 궁궐이나 절에서 사용된 독특한 창살로 건축이 가져야 할 위엄과 신성함을 표현하는 장식이에요. 제가 답사를 하며 꽃창살을 유난히 열심히 찾아보았는데, 3권에 따로 챕터를 만들어 넣었을 정도예요.


0e5df8ff5187c.jpeg나전경함 / 윤설희 작가 제공


세 권의 책 표지에 형압으로 넣은 선들도 나름의 의미가 있어요. 책 상자에서 가장 아래 놓는 3권 『산사를 찾아보기』는 가로선으로 기단을, 2권 『산사를 만나보기』는 세로선으로 기둥을, 가장 위에 놓이는 1권 『산사를 이해하기』는 사선으로 지붕을 표현하려 했지요.


81886b767ed73.jpg나전경함에서 영감을 받은 책 패키지 ⓒ윤설희


e27cdabfcf4a5.jpg책 표지에 들어간 선 ⓒ윤설희


Q. 산사를 백 번 넘게 다니시며 작가님께 일어난 변화가 있나요?

지금 살고 있는 수원으로 이사를 오기 전에는 집에 물건을 많이 놓고 살았어요. 이사를 하면서 관리를 해야겠더라고요. 삶의 공간이 심플하면 좋겠다, 회사 생활에 치인 나에게 집이 휴식의 공간이 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차를 마실 수 있는 분위기, 모시 천 같은 재료를 인테리어에 사용하기도 했고, 여백과 밀도를 조화롭게 배치하려고 했어요.


9461ed5931a07.jpg7f7ce32bfd406.jpg『산사 안내서』에서 ⓒ윤설희


Q. 실제로 ‘오늘의집’에 작가님 댁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인테리어를 잘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총 세 가지가 있어요. 말씀드린 것처럼 여백과 높은 밀도의 하모니를 저는 가장 좋아하고요. 두 번째로는 여러 재질감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거예요. 그게 저에게 풍부한 영감을 주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콘셉트가 필요해요. 머릿속에 색감이라든가 톤이라든가 미리 정해둔 다음 그 안에서 인테리어 구상을 하는 편입니다. 스케치도 하고,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시뮬레이션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에요. 


페인트로 다 덮어버리는 모노톤도 물론 편안함을 주지만, 저는 사람의 미감, 아름다움을 감각하는 능력이 순전히 주관적인 게 아니라 자연에서 오는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해요. 자연에서 보는 패턴, 밀도감, 비율이 결국 우리의 미감에 영향을 주는 것이지요. 또, 그렇게 자연과 닮은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이고요.


Q. 산사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작가님께 ‘공간’이 특별한 의미인 것 같습니다.

평소 좋은 공간을 찾아다니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공간이 많은 영감을 주고, 저의 기분, 무드에도 영향을 미치니까요. 공간을 제대로 알려면 아침에서 저녁까지, 한 계절에서 다음 계절까지, 그렇게 몇 년씩 해가 바뀌는 시간이 필요해요. 시간에 따라 공간이 들려주는 목소리가 달라지니까요.


또, 공간은 행복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식물이 아니니까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나를 옮겨주는 게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6073bf008baf9.jpgⓒ윤설희


Q. 특별히 좋아하는 공간이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카페를 자주 찾아요. 매일 여행할 수 없으니 뭘 해도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자가 제 인생의 모토이기도 하고요. 또, 서점도 좋아해요. 외국에 나가면 반드시 서점에 가요. 책 표지 같은 데서 그래픽적인 영감을 받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서점이 가지는 분위기가 그 나라의 문화를 표현해 준다고 여기고, 그 무드 때문에 서점에 가게 되는 것 같아요. 비슷한 맥락에서 외국으로 여행을 가면 슈퍼마켓 가는 것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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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에는 홋카이도로 로드트립을 다녀오셨더군요.

이번 홋카이도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제 네 번째 책이었던 『#4. 홋카이도』의 개정판을 내기 위해서였어요. 개정 콘셉트로 ‘캠핑’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는데, 홋카이도가 특산물로 유명하기 때문이에요. 일본 유수의 식량 공급처이기도 하고 홋카이도 브랜드의 영향력이 크기도 하지요. 맛도 있고요. 그래서 홋카이도 식재료로 그 지역에서 바로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또, 캠핑 문화가 잘 자리 잡고 있어서 어디서든 근처에서 쉽게 캠핑장을 찾을 수 있었어요. 자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홋카이도를 제대로 느낄 수 있던 여행이었어요.


Q. 그곳에서 아이스크림도 배우셨지요?

제가 MBTI로 말하자면 아주 큰 대문자 J(판단형)인 사람이었어요. 불안도가 높아서 그랬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서 불안함도 줄어들고 계획적인 면도 점점 약해지는 것 같아요. 이제는 우연히 만나는 기회들을 찾아 샛길로 잘 빠져나가게 됐어요. 아이스크림도 우연히 들어간 집의 아이스크림이 맛있었고, 마침 배울 수도 있는 곳이라 배우고 왔어요. 이전 『#4. 홋카이도』에 아이스크림 지도를 만들었을 정도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3c753f6006baf.jpg96591701e1770.jpg윤설희 작가의 네 번째 책이었던『#4 홋카이도』와 아이스크림 지도 ⓒ윤설희


Q. SNS를 보면 요리도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만둣집이랑 반찬가게를 하셨어요. 어깨너머로 보고 도와드리면서 배운 것들이에요. 요리하는 자체를 좋아하기도 해요. 여행 다닐 때 먹어본 음식을 집에 와서 따라 해 보는 게 저의 즐거움 중 하나에요. 한 2년 정도는 작업에 열중하느라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여러 사람을 초대해서 요리를 해 주는 게 제가 그분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어요. 상을 차릴 때 쓰는 그릇에도 각각의 사연, 이야기가 있어서 식사 중 그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즐겼고요.


예술, 창작자들의 원동력은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맥락으로 요리를 하면 제가 좋아하는 식감, 제가 좋아하는 플레이팅, 제가 좋아하는 맛들의 조화 같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그게 다른 작업에도 영감을 줘요.


Q. 영상 작업도 하시는 것 같아요.

대학 때 영상동아리 활동을 하며 회장까지 맡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관련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어요. 책을 만들다 보니 책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도 있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영상으로 채우자고 생각하는데, 영상은 또 영상대로 보통 일이 아니라 촬영한 것도 아직 마무리가 다 안 된 상태예요. 그래도 산사 관련 다큐멘터리, 홋카이도 여행 관련 영상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Q. 작가님은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혹시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밀도가 있는 창작자로 기억이 되고 싶어요. 세상에는 정말 수많은 책과 영상이 나와 있어요. 어떤 작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그걸 소화하는 누군가의 시간을 쓰는 것이고, 항상 유익하기만 한 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환경오염을 발생시키기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하나를 내더라도 쉽게 내지 말자, 늘 다짐하고 있어요. 쉽게 쓴 책을 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던 거예요. 책뿐만 아니라 제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밀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디자이너 혹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기억되고 싶은 바를 말하자면, 사물이 가지는 재질을 잘 표현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게 저의 이상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우선 내년에는 『#4. 홋카이도』를 비롯해 앞서 냈던 책들을 정리해서 다시 낼 계획이에요. 차기 작품의 주제로는 저희 어머니의 요리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 외 산사 답사나 홋카이도 여행 등 지금껏 찍어둔 수많은 영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11779adf75091.jpgⓒ윤설희




인터뷰 신태진, 이은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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