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녁 식사 후에 돌고래 호텔의 로비에 있는 질이 좀 떨어지는 오렌지색 소파 위에서 쉬고 있었다. (…) 우리 이외에도 몇 사람의 숙박객은 있을 텐데 모두가 그늘에 놓인 미라처럼 소리 없이 방에 틀어박혀 있는 모양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양을 쫓는 모험』 중
서촌으로 옮겨온 라다크의 호텔,
전시 〈Dolphin Hotel Room Number 406〉
지난여름, 라다크의 울레(Ulley)라는 마을에 ‘돌핀 호텔’이 문을 열었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원지대 라다크. 울레는 그런 라다크의 최대 도시 레(Leh)에서도 차를 타고 2~3시간은 더 들어가야 하는 작은 마을이다. 그토록 외진 곳에 세워진 호텔에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올까? 그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원했던 걸까?
〈돌핀 호텔 406호(Dolphin Hotel Room Number 406)〉로
전시 〈Dolphin Hotel Room Number 406〉이 우리를 라다크의 돌핀 호텔로 안내한다. 서촌 ‘호전다실’에서 출발하는 이 기묘한 통로는 라다크의 울레로, 지난여름 그 고원 마을에서 흘러간 시간으로 이어진다. 전시 〈Dolphin Hotel Room Number 406〉을 기획했으며 돌핀 호텔의 운영자이자 투숙객이었던 다섯 명의 창작자가 ‘406호’라고 쓰인 룸 키를 넘겨주었다.

다실(茶室) 안에 절묘하게 마련된 길쭉한 전시실-호텔의 복도는 어두컴컴했다. 스피커에서는 한국어, 프랑스어, 영어로 읽는 「바람」이라는 시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울레의 돌핀 호텔도 이런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고원 위에 솟아 있을까. 손전등을 건네받았다. 벽에 붙어 있는 작품을 자세히 보기 위해 조명을 비췄다. 시야가 작은 원 안에 한정되는 만큼 더 몰입이 됐다.
손전등으로 더듬는 전시
사진, 에세이, 소설, 희곡, 시. 고원과 바람, 사람과 환상의 동물, 하늘과 별, 그림자가 작가마다 다른 형식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조각 몇 개를 잃어버렸지만 원래 그림은 알아볼 수 있는 퍼즐 같았다. 혹은 몇 조각이 사라져 생긴 여백으로써야 완성되는 퍼즐이거나.
울레의 풍경
복도를 지나면 작은 406호 방이 나온다. 잔뜩 쌓인 막대 향 덕분에 방금 기분 좋은 룸 스프레이를 뿌린 것 같았고, 반상 위에는 노트와 연필이 놓여 있었다. 투숙객이 남기는 방명록이었지만,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 될 터였다. 연필 끝으로 빈 페이지를 조준하며 무엇이든 써서 돌핀 호텔 406호와 계속 연결돼야 한다는 필연 같은 걸 느꼈다.


돌핀 호텔 406호
다시 복도를 거슬러 호텔을 나서자 세 명의 룸메이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왼쪽부터 지은, 춘자, 젠젠 작가
다른 세계로의 통로, 돌핀 호텔
춘자 | 돌핀 호텔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양을 쫓는 모험』과 『댄스 댄스 댄스』에 나오는 공간이에요. 20대의 저에게 돌핀 호텔은 주인공이 완전히 자기 내면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다른 존재를 만나게 되는,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포탈 같은 곳으로 인상에 남았어요. 줄곧 세상 어딘가에 있을 ‘돌핀 호텔’을 찾게 되었죠.


돌핀 호텔 | <돌핀 호텔 프로젝트> 제공
소설 속 배경이었던 삿포로는 물론,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던 돌핀 호텔을 발견한 것은 예상치 못한 곳이었다. 김재은(젠젠) 작가와 크루즈 여행을 하다가 도착한 영국 사우샘프턴(Southampton)이었다. 맥주 한 잔 때문이었는지,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노을 위에 비행기 한 대가 유유히 날아가고 있어서였는지, 막 다른 세계로 진입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눈앞에 거의 문을 닫은 듯한 돌핀 호텔이 나타났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있었다.
춘자 | 라다크 울레 주변은 눈표범 서식지로 유명해요. 눈표범은 원래 해발 6,000m 이상에서 살기 때문에 평소엔 볼 수 없는데, 겨울에는 사냥감을 찾기 위해 밑으로 내려온다고 해요. 그래서 집이 7채밖에 없는 이 작은 마을에 눈표범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요.

라다크, 울레 | <돌핀 호텔 프로젝트> 제공
마치 환상 같은 동물을 찾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곳이나마 마련해 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울레 출신의 라다크 사람이 있다. 그는 객실 10개에 부엌도 완비한 근사한 별장을 지었다. 예상대로 겨울이면 별장은 성황이었다. 그러다가 여름이 되면 눈표범은 도로 고지대로 올라가고, 마을은 텅 비어 버렸다.
춘자 | 그 친구를 따라 별장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을 창작자 레지던시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감을 앞둔 사람들에게 몰입을 위한 고립을 선사하는 거예요.
울레에는 식당도, 식료품점도 없다. 뭘 사려면 왕복 4시간 거리의 레를 다녀와야 하는데, 이동 비용만도 10만 원이나 들었다. 한 번 도시로 나갈 때마다 양손 가득 장을 봤다가 더 이상 요리할 게 없을 때까지 버텼다. 인터넷도 느려 절로 ‘디지털 디톡스’가 됐다. 작업하고 산책하고 요리하고, 별을 보다 잠들고. 그게 전부였다.


울레에서 보낸 시간 | <돌핀 호텔 프로젝트> 제공
호텔이 전시가 되기까지
로리앤(Laurianne)의 「Le Vent」
올해 돌핀 호텔은 시범 운영이었다. 춘자, 젠젠, 지은, 수영, 그리고 프랑스인 로리앤(Laurianne) 다섯 명이 울레의 돌핀 호텔에 묵으며 창작 활동을 했다. 로리앤(Laurianne)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라다크에 오진 못했다. 파리에서 돌핀 호텔을 홍보하고, 그곳을 그리워하며 전시장에 세 가지 언어로 흐르는 「바람(Le Vent / The Wind)」이라는 시를 썼다. 최종적으로 ‘돌핀 호텔’을 소재로 한 오브제를 제작해 한국으로 보냈지만, 아직 대양 어딘가를 지나고 있어 전시장에 도착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젠젠 | 돌핀 호텔에서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글을 완성했어요. 제가 술을 좋아해서 수많은 여행지에서 술을 마시고 다녔는데, 그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은 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소설을 썼어요. 대학교 때 이후로 처음이었죠. 「눈표범을 찾는 여행」이라는 그 소설의 일부를 이번 전시에 선보였고요.
작가 젠젠
또 다른 돌핀 호텔의 투숙객 지은 작가는 원래 독자로서 춘자와 젠젠 작가를 만났다. 라다크에 가고 싶어 수소문하던 중 춘자와 젠젠의 공저 『카페, 라다크』를 추천받았던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과 연이 닿았고, 이후에 라다크도 다녀왔지만 고산증으로 고생이 많았다.
지은 | 라다크는 다시 못 가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춘자 작가님께 전화가 왔어요. 라다크에서 뭔가를 해 보려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참여해 달라고요. 알겠다고, 그런다고 했지요.
작가 지은
고산증도 적응이 되는 건지도. 지은 작가에게 돌핀 호텔은 너무 쉬기 좋은 환경이었다. 잠 많이 자고, 춘자와 젠젠 작가가 해 주는 음식을 먹고, 다시 단잠에 빠지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은 | 돌핀 호텔에서 만난 밤의 한때를 한번 남기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들과 나눈 대화를 희곡 「문랜드」로 만들었어요. 저를 비롯해 모든 작가가 돌아가며 낭독을 해서 녹음했고요.
돌핀 호텔에서 사진 작업(「지구여행 라다크」)을 한 수영 작가는 현재 동해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전시장 곳곳에 붙은 사진으로나마 수영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섯 명의 작가가 돌핀 호텔에서 완성한 작품들은 『Searching for Snowleopard』라는 e-book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전시를 보며 궁금해진 나머지 퍼즐 조각들을 그 책을 통해 확인하기로 했다.
손전등으로 작품을 보는 작가 춘자
앞으로의 전시와 돌핀 호텔의 새로운 시즌
〈Dolphin Hotel Room Number 406〉 전시는 11월 3일까지 서촌 ‘호전다실’에서 계속된다. 전시 막바지인 11월 2일(토)과 3일(일)에는 특별한 이벤트도 마련했다.
춘자 | 11월 2일과 3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이곳에서 ‘돌핀 마켓’을 열어요. 인도 과자를 비롯해 비누, 향수, 향, 소금, 가방, 포스터 등을 호전다실 마당에 늘어놓고 판매할 예정이에요.
또, 양일 오후 2시부터 3시 30분까지는 각각 ‘돌핀 호텔 체크인’과 ‘돌핀 호텔 체크아웃’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라다크의 울레 마을과 돌핀 호텔 곳곳을 담은 짧은 영상을 상영하고, 406호에서 9명의 투숙객이 릴레이로 글쓰기를 한다. 젠젠 작가가 손수 끓인 밀크티와 호전다실의 홍차, 인도의 비스킷을 즐기는 티타임도 즐긴다.
프로그램 참가는 각각 선착순 6명, 참가비 없이 무료로 신청(https://forms.gle/MnCQ1k6VZPaY2f4u9)할 수 있다.
돌핀 호텔에서 | <돌핀 호텔 프로젝트> 제공
춘자 | 토요일에는 지은 작가의 작품 「문랜드」를 함께 낭송하고 녹음해서 당일 전시 마지막에 플레이해요. 일요일에는 로리앤(Laurianne) 작가의 시 「Le Vent」 낭송하고 녹음해서 역시 전시 마지막을 장식할 예정이고요.
참여형 전시는 작가와 관객의 경계를 허문다. 이처럼 돌핀 호텔은 울레에서도, 서촌에서도 창작자 레지던시의 역할을 하는 듯 보였다. 이 ‘몰입을 위한 고립’의 시간이 내년에도 계속될까.
춘자 | 내년 여름, 5월부터 9월까지 돌핀 호텔이 본격적으로 문을 열어요. 10개의 방에 아마도 한 명씩, 최대 10명의 창작자와 함께 돌핀 호텔에 고립되어 보려고 합니다. 누군가 체크아웃을 하면 또 다음 사람이 그 방에 체크인을 하겠죠. 그렇게 많은 창작자가 찾아와 그곳에서 무사히 마감을 넘겼으면 해요.


<돌핀 호텔 프로젝트> 제공
마지막으로 전시실을 어둡게 한 전시 의도가 궁금했다.
젠젠 | 돌핀 호텔 복도가 진짜 어둡거든요. 그걸 구현해 낸 거예요.
실제 울레에 있는 돌핀 호텔의 복도가 어두웠다는 것인지, 소설 『댄스 댄스 댄스』 속 돌핀 호텔의 캄캄한 복도를 말한 것인지 다시 묻지는 않았다. 아마도 두 호텔 모두를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주 이루카(돌고래) 호텔의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그곳에 ‘포함되어’ 있다. 말하자면, 어떤 계속적인 상황으로서 나는 그 호텔 안에 ‘포함되어’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중
취재·인터뷰 | 이주호, 신태진
글·사진 | 신태진
서촌으로 옮겨온 라다크의 호텔,
전시 〈Dolphin Hotel Room Number 406〉
지난여름, 라다크의 울레(Ulley)라는 마을에 ‘돌핀 호텔’이 문을 열었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원지대 라다크. 울레는 그런 라다크의 최대 도시 레(Leh)에서도 차를 타고 2~3시간은 더 들어가야 하는 작은 마을이다. 그토록 외진 곳에 세워진 호텔에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올까? 그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원했던 걸까?
전시 〈Dolphin Hotel Room Number 406〉이 우리를 라다크의 돌핀 호텔로 안내한다. 서촌 ‘호전다실’에서 출발하는 이 기묘한 통로는 라다크의 울레로, 지난여름 그 고원 마을에서 흘러간 시간으로 이어진다. 전시 〈Dolphin Hotel Room Number 406〉을 기획했으며 돌핀 호텔의 운영자이자 투숙객이었던 다섯 명의 창작자가 ‘406호’라고 쓰인 룸 키를 넘겨주었다.
다실(茶室) 안에 절묘하게 마련된 길쭉한 전시실-호텔의 복도는 어두컴컴했다. 스피커에서는 한국어, 프랑스어, 영어로 읽는 「바람」이라는 시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울레의 돌핀 호텔도 이런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고원 위에 솟아 있을까. 손전등을 건네받았다. 벽에 붙어 있는 작품을 자세히 보기 위해 조명을 비췄다. 시야가 작은 원 안에 한정되는 만큼 더 몰입이 됐다.
사진, 에세이, 소설, 희곡, 시. 고원과 바람, 사람과 환상의 동물, 하늘과 별, 그림자가 작가마다 다른 형식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조각 몇 개를 잃어버렸지만 원래 그림은 알아볼 수 있는 퍼즐 같았다. 혹은 몇 조각이 사라져 생긴 여백으로써야 완성되는 퍼즐이거나.
복도를 지나면 작은 406호 방이 나온다. 잔뜩 쌓인 막대 향 덕분에 방금 기분 좋은 룸 스프레이를 뿌린 것 같았고, 반상 위에는 노트와 연필이 놓여 있었다. 투숙객이 남기는 방명록이었지만,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 될 터였다. 연필 끝으로 빈 페이지를 조준하며 무엇이든 써서 돌핀 호텔 406호와 계속 연결돼야 한다는 필연 같은 걸 느꼈다.
다시 복도를 거슬러 호텔을 나서자 세 명의 룸메이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세계로의 통로, 돌핀 호텔
춘자 | 돌핀 호텔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양을 쫓는 모험』과 『댄스 댄스 댄스』에 나오는 공간이에요. 20대의 저에게 돌핀 호텔은 주인공이 완전히 자기 내면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다른 존재를 만나게 되는,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포탈 같은 곳으로 인상에 남았어요. 줄곧 세상 어딘가에 있을 ‘돌핀 호텔’을 찾게 되었죠.
소설 속 배경이었던 삿포로는 물론,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던 돌핀 호텔을 발견한 것은 예상치 못한 곳이었다. 김재은(젠젠) 작가와 크루즈 여행을 하다가 도착한 영국 사우샘프턴(Southampton)이었다. 맥주 한 잔 때문이었는지,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노을 위에 비행기 한 대가 유유히 날아가고 있어서였는지, 막 다른 세계로 진입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눈앞에 거의 문을 닫은 듯한 돌핀 호텔이 나타났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있었다.
춘자 | 라다크 울레 주변은 눈표범 서식지로 유명해요. 눈표범은 원래 해발 6,000m 이상에서 살기 때문에 평소엔 볼 수 없는데, 겨울에는 사냥감을 찾기 위해 밑으로 내려온다고 해요. 그래서 집이 7채밖에 없는 이 작은 마을에 눈표범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요.
마치 환상 같은 동물을 찾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곳이나마 마련해 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울레 출신의 라다크 사람이 있다. 그는 객실 10개에 부엌도 완비한 근사한 별장을 지었다. 예상대로 겨울이면 별장은 성황이었다. 그러다가 여름이 되면 눈표범은 도로 고지대로 올라가고, 마을은 텅 비어 버렸다.
춘자 | 그 친구를 따라 별장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을 창작자 레지던시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감을 앞둔 사람들에게 몰입을 위한 고립을 선사하는 거예요.
울레에는 식당도, 식료품점도 없다. 뭘 사려면 왕복 4시간 거리의 레를 다녀와야 하는데, 이동 비용만도 10만 원이나 들었다. 한 번 도시로 나갈 때마다 양손 가득 장을 봤다가 더 이상 요리할 게 없을 때까지 버텼다. 인터넷도 느려 절로 ‘디지털 디톡스’가 됐다. 작업하고 산책하고 요리하고, 별을 보다 잠들고. 그게 전부였다.
울레에서 보낸 시간 | <돌핀 호텔 프로젝트> 제공
호텔이 전시가 되기까지
올해 돌핀 호텔은 시범 운영이었다. 춘자, 젠젠, 지은, 수영, 그리고 프랑스인 로리앤(Laurianne) 다섯 명이 울레의 돌핀 호텔에 묵으며 창작 활동을 했다. 로리앤(Laurianne)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라다크에 오진 못했다. 파리에서 돌핀 호텔을 홍보하고, 그곳을 그리워하며 전시장에 세 가지 언어로 흐르는 「바람(Le Vent / The Wind)」이라는 시를 썼다. 최종적으로 ‘돌핀 호텔’을 소재로 한 오브제를 제작해 한국으로 보냈지만, 아직 대양 어딘가를 지나고 있어 전시장에 도착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젠젠 | 돌핀 호텔에서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글을 완성했어요. 제가 술을 좋아해서 수많은 여행지에서 술을 마시고 다녔는데, 그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은 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소설을 썼어요. 대학교 때 이후로 처음이었죠. 「눈표범을 찾는 여행」이라는 그 소설의 일부를 이번 전시에 선보였고요.
또 다른 돌핀 호텔의 투숙객 지은 작가는 원래 독자로서 춘자와 젠젠 작가를 만났다. 라다크에 가고 싶어 수소문하던 중 춘자와 젠젠의 공저 『카페, 라다크』를 추천받았던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과 연이 닿았고, 이후에 라다크도 다녀왔지만 고산증으로 고생이 많았다.
지은 | 라다크는 다시 못 가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춘자 작가님께 전화가 왔어요. 라다크에서 뭔가를 해 보려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참여해 달라고요. 알겠다고, 그런다고 했지요.
고산증도 적응이 되는 건지도. 지은 작가에게 돌핀 호텔은 너무 쉬기 좋은 환경이었다. 잠 많이 자고, 춘자와 젠젠 작가가 해 주는 음식을 먹고, 다시 단잠에 빠지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은 | 돌핀 호텔에서 만난 밤의 한때를 한번 남기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들과 나눈 대화를 희곡 「문랜드」로 만들었어요. 저를 비롯해 모든 작가가 돌아가며 낭독을 해서 녹음했고요.
돌핀 호텔에서 사진 작업(「지구여행 라다크」)을 한 수영 작가는 현재 동해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전시장 곳곳에 붙은 사진으로나마 수영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섯 명의 작가가 돌핀 호텔에서 완성한 작품들은 『Searching for Snowleopard』라는 e-book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전시를 보며 궁금해진 나머지 퍼즐 조각들을 그 책을 통해 확인하기로 했다.
앞으로의 전시와 돌핀 호텔의 새로운 시즌
〈Dolphin Hotel Room Number 406〉 전시는 11월 3일까지 서촌 ‘호전다실’에서 계속된다. 전시 막바지인 11월 2일(토)과 3일(일)에는 특별한 이벤트도 마련했다.
춘자 | 11월 2일과 3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이곳에서 ‘돌핀 마켓’을 열어요. 인도 과자를 비롯해 비누, 향수, 향, 소금, 가방, 포스터 등을 호전다실 마당에 늘어놓고 판매할 예정이에요.
또, 양일 오후 2시부터 3시 30분까지는 각각 ‘돌핀 호텔 체크인’과 ‘돌핀 호텔 체크아웃’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라다크의 울레 마을과 돌핀 호텔 곳곳을 담은 짧은 영상을 상영하고, 406호에서 9명의 투숙객이 릴레이로 글쓰기를 한다. 젠젠 작가가 손수 끓인 밀크티와 호전다실의 홍차, 인도의 비스킷을 즐기는 티타임도 즐긴다.
프로그램 참가는 각각 선착순 6명, 참가비 없이 무료로 신청(https://forms.gle/MnCQ1k6VZPaY2f4u9)할 수 있다.
춘자 | 토요일에는 지은 작가의 작품 「문랜드」를 함께 낭송하고 녹음해서 당일 전시 마지막에 플레이해요. 일요일에는 로리앤(Laurianne) 작가의 시 「Le Vent」 낭송하고 녹음해서 역시 전시 마지막을 장식할 예정이고요.
참여형 전시는 작가와 관객의 경계를 허문다. 이처럼 돌핀 호텔은 울레에서도, 서촌에서도 창작자 레지던시의 역할을 하는 듯 보였다. 이 ‘몰입을 위한 고립’의 시간이 내년에도 계속될까.
춘자 | 내년 여름, 5월부터 9월까지 돌핀 호텔이 본격적으로 문을 열어요. 10개의 방에 아마도 한 명씩, 최대 10명의 창작자와 함께 돌핀 호텔에 고립되어 보려고 합니다. 누군가 체크아웃을 하면 또 다음 사람이 그 방에 체크인을 하겠죠. 그렇게 많은 창작자가 찾아와 그곳에서 무사히 마감을 넘겼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전시실을 어둡게 한 전시 의도가 궁금했다.
젠젠 | 돌핀 호텔 복도가 진짜 어둡거든요. 그걸 구현해 낸 거예요.
실제 울레에 있는 돌핀 호텔의 복도가 어두웠다는 것인지, 소설 『댄스 댄스 댄스』 속 돌핀 호텔의 캄캄한 복도를 말한 것인지 다시 묻지는 않았다. 아마도 두 호텔 모두를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취재·인터뷰 | 이주호, 신태진
글·사진 | 신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