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전시] 디스토피아 속에서 유토피아를 찾는 여정, <이불: 1988년 이후> 두 번째 이야기

2025-11-11


본다는 것 #7


:: 디스토피아 속에서 유토피아를 찾는 여정, <이불: 1988년 이후> 첫 번째 편 읽기


<발굴>, 2007 / <스케일 오브 텅>, 2017-2018


이불은 개인과 집단, 역사적 이슈, 사회, 문화, 정치적 사건들을 기반으로 젠더, 인종, 계급, 인간과 기술의 관계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그것은 결국 부조리한 현실의 반영이자 고발이었으며 미래를 향한 경고이자 두려움이었다. 그렇기에 기대하는 또 다른 희망이기도 하다. 이불 작가의 작품들은 비단 작가 개인의 역사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작품이 기록해 보여주는 풍경들은 과거의 시간에만 머물지 않고 지금의 우리를 들여다보게 한다.


콘크리트 기둥 위, 뚫린 구멍 사이로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 다발과 구부러진 도로는 성수대교 붕괴를 떠올리게 하고(<발굴>, 2007), 잠수복 재료인 네오플랜과 알루미늄 코팅 천 등을 이용한 조형물(<스케일 오브 텅>, 2017-2018)은 마치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배의 마지막 흔적처럼 출렁거린다. 이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한 작품이다.


전시관 중간에 설치된 흰색 타일의 거대 욕조 안에는 칠흑과 같은 검은 물이 채워져 있고 그 주변을 민족의 기원과 영험한 기운이 담긴 백두산 천지가 둘러싸고 있다. 이 작품은 민주화 과정에서 물고문으로 희생당한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애도한다(<천지>, 2025 (2007년 작품 재제작)). 마침 천지 속 물 위로 <스턴바우 NO1>의 화려함이 비친다. 대비되는 장면에서 역사의 모순과 부조리를, 한편으로는 절망 속에서도 반짝이는 이상을 떠올리게 한다. 


<천지>, 2025 / <스턴바우 NO1>, 2006


<해빙: 다카키 마사오>라는 제목의 작품은 언뜻 보면 반투명한 얼음덩어리로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갇힌 누군가를 발견하게 된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그가 누구인지는 작품의 부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일본 이름)’를 통해 알 수 있다. 


<해빙: 다카키 마사오>, 2007


그라운드 갤러리 공간 역시 정해진 동선이 없기에 관람객은 작품과 작품 사이를 유기적으로 이동하며 작품의 시각적 규모뿐 아니라 직접 체험하는 경험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장대한 서사를 읽어 내려갈 수 있다. 


특히 거울이 만들어 내는 굴절과 반사를 활용한 작품들이 많은데 이는 반사 되는 상의 변화를 통해 평면적 공간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다층적인 시공간으로 실현시킨다. 수많은 거울 조각들로 만들어진 미로 속에서 출구를 찾아보고(<비아 네가티바>, 2022 (2012년 작품 재제작)),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왜곡된 반영을 통해 온몸으로도 느껴보고(<수트레인>, 2012/2016), 천장에 매달려 있어야 할 화려한 샹들리에(<애프터 브루노 타우트: 사물의 달콤함을 경계하라>, 2007)가 우주를 유영하듯 낮게 부유하는 모습에서 환상적이지만 그렇기에 손에 닿을 수 없는 허영임을 깨닫게 되는. 이는 붕괴되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비아 네가티바>의 내부 / <수트레인>의 내부 


<애프터 브루노 타우트: 사물의 달콤함을 경계하라>, 2007 / <수트레인>과 <당신의 차갑고 어두운 눈동자 속 무한한 섬광>, 2009


마지막으로 이불 작가의 30여 년간의 예술 여정이 담긴 약 150여 점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작품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2009년 작품으로 <몽그랑레시> 연작의 발전 단계에서 켄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진 <무제 #26>이다. 잘 다듬어진 메마른 콘크리트의 앞면과 그 이면에 고스란히 드러난 얽힌 철제 구조. 그 형태가 마치 인간의 얼굴 같기도 하다. 작품의 크기와 상관없이 이불 작가가 그려내는 주제를 가장 직관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 생각된다. 


<무제 #26>, 2009


결국 모든 예술은 부지런히 쌓아 올린 작가 기억의 총체일 터, 작가는 작품을 통해 과거를 반추하고 현재를 고민하며 다듬고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우리 역시 그것들을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기울어진 세계에서 목격한 일련의 사건을 목도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생성되어 움직인다. 


우리 인간은 결코 유토피아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찾아 나선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다를 수 없는 유토피아 앞에서, 실패와 좌절의 흔적인 디스토피아 앞에서 오히려 우리는 위축되기보다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간다. 디스토피아 속에서 유토피아를 찾는 여정, 이불 작가가 표현한 세계처럼 그야말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공존이다. 


리움 미술관 M3: 블랙박스, 그라운드 갤러리
전시 기간 : 2025. 09. 04 – 2026. 01. 04
전시 요금: 성인 16,000원 (오디오 가이드 무료 대여)
*이번 전시는 리움 미술관과 홍콩 M+ 함께 기획한 것으로 내년 3월부터 홍콩에서도 열린다.




글·사진 | 한수정

우아한 삶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관념과 현실을 분리시킨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혼자 떠나는 여행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규슈단편>을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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